2024-03-29 08:05 (금)
옛날에 우리들은
옛날에 우리들은
  • 박태홍
  • 승인 2015.12.07 2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태홍 본사 회장
 60~70년대의 다방은 예전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모닝커피를 마시고 출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점심을 먹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다방을 드나들곤 했었다. 이들의 대화내용은 자질구레한 집안일에서부터 직장, 나랏일까지 다양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전의 다방은 서로 간이 소통하는 장소였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 함께 일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건물만 새로 지으면 한 켠의 장소는 꼭 다방이란 간판이 걸리면서 문을 열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음악다방이 있었는가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이 지역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장소로 활용되는 다방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소통의 장소, 즉 다방이 점차 사라지면서 젊은이들만을 상대로 한 이름도 낯선 외국 브랜드의 커피집들만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젊은이들이 가는 장소는 늘어나는 반면 나이 든 사람들은 갈 곳이 마땅찮다. 목욕탕, 복덕방, 경로당이 나이 든 사람들의 모임 장소다.

 직장인들이 복도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복도통신이라 일컫는다. 직장 내의 사소한 소식도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생산되기에 복도통신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지역 정가의 통신은 목욕탕, 경로당, 복덕방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대화의 장소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에 모이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든 늙은이들뿐이어서 그런지 신문에서 읽은 방송에서 본 그 날의 뉴스로 오늘을 살아가며 나랏일을 걱정한다. 경로우대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은 6ㆍ25를 겪은 사람에서부터 4ㆍ19, 5ㆍ16, 유신체제 12ㆍ12, 6ㆍ29까지 격정의 세월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따지고 보면 보수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월남전과 중동진출로 직접 달러를 벌어들인 세대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뜯어고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잘 보살피고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남북으로 갈라진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여ㆍ야 갈라져 이념논쟁을 일삼고 있는 정쟁의 세태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 시작은 “옛날에 우리들은”으로 시작해서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어”로 끝이 난다. 한일회담결사반대를 외치며 시가지를 누볐던 일, 분식장려의 국가시책에 동참한 일, 나라 경제를 걱정하며 국산품 애용을 생활화한 일 등 끝이 없다. 50~60년 전의 일이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는 국가 이익만을 생각하고 생활화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교권이 사라진 오늘날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가 하면 급진적 노동운동의 과격 시위를 질타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종 언론매체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이들의 대화에서 들을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도가 사명인 언론이 미래에 있을 만한 일을 유추, 예측보도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얘기도 일리가 있고 언론 또한 각 언론이 가지고 있는 편집 또한 편성방향에 의해 기사를 생산하기에 틀림이 없다 할 수 있다. 이들의 대화에서도 이쪽과 저쪽이 있기 마련이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듣는 시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음ㆍ양의 이치가 있기 마련이듯이 이들의 대화에서도 양극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대화내용 또한 오늘날 이 나라의 정국을 보는 것 같다. 네가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하고 했던가? 이들의 갑론을박을 탓할 수만은 없다. 나랏일도 그렇다. 그러나 사고를 지닌 인간이라면 바른길을 가야 하고 바른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달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면했다. 유신시절 연금상태일 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절규했던 그의 바른말이 떠오른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역사바로세우기 이념과 계파를 가리지 않은 인사 등용, 금융실명제 등과 리더십의 치적이 사후에 거론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었으며 대통령이었다. 굴곡도 없지만은 않았다. 인사가 만사라며 인재 등용을 폭넓게 했다. 아랫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였고 강한 카리스마만큼 반대의견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지니기도 했다. 아들의 구속을 면하게 해달라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됐다마” 한마디로 일관한 대표적 경상도 사나이이기도 했다. 그는 갔어도 그가 남긴 교훈은 우리들의 가슴에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경상도 사나이 뚝심도 우리들은 배워야 한다. 여ㆍ야를 넘나들었던 김 전 대통령은 강력한 야당지도자였으며 여당의 대통령이 된 기묘한 정치적 역정이 있기도 했다. 우리들은 작금에 그와 같은 강력한 야당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다. 고 남인수가 가고 없어도 그의 노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지금도 애창되고 이듯이 김 전 대통령이 남긴 그 시대의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경로당, 목욕탕, 복덕방에서는 한 시대를 그와 함께 살아온 이들은 그를 찬미하는 목소리가 애잔하게 흐를 것이다. 그가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소통과 화합의 가르침도 우리들은 영원히 기억하며 가슴에 담아두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