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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의 겨울, 여주 신륵사
천년고찰의 겨울, 여주 신륵사
  • 연합뉴스
  • 승인 2015.12.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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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과 빚어내는 선경(仙境)…템플스테이로 '추억쌓기'
겨울 산사(山寺)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스님들은 동안거에 들어가고 불자들의 발길은 뜸해진다. 자연은 사찰 주변을 물들였던 알록달록 총천연색을 순백으로 통일한다.

말소리, 새소리도 잦아들어 소리의 세계에서도 여백이 차지하는 면적은 늘어난다.

피곤에 찌든 현대인의 시·청각은 겨울 사찰에서 모처럼 한가롭다.

경기도 여주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년)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로는 드물게 강변, 평지에 자리잡았다. 뒤로 봉미산이 나지막이 섰고 앞으로 남한강이 폭넓게 흐른다.

신륵사 앞 남한강에는 봄·여름·가을 내내 수상스키, 제트스키, 웨이크보드, 바나나보트가 물살을 가른다. 겨울에는 강 건너편을 오가며 사람과 짐을 실어나르던 황포돛배조차 다니지 않는다. 신륵사의 겨울 여백은 남한강으로 도드라진다.

신륵사관광지 주차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도 남한강이다. 넉넉한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100여m를 걷다보면 신륵사 일주문에 다다른다.

일주문에서 신륵사 중심부까지가 또 100여m이다. 이 고운 흙길은 봄·여름·가을에는 양옆으로 신록과 단풍이 화려하다. 겨울에는 가지마다 두둑이 쌓인 눈이 동심을 자극한다.

신륵사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인 구룡루가 있다. 구룡루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면 남한강이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단청을 곱게 칠한 구룡루의 옆·윗기둥은 동양화를 담은 단아한 액자가 된다.

구룡루를 지나면 신륵사의 중앙 법당인 극락보전과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심검당, 사무실로 쓰이는 적묵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심검당과 적묵당이 거꾸로 선 ㄷ자 모습으로 가깝게 모여 있다.

극락보전은 웅장하고 화려하다는 다포계 팔작지붕 형식으로 지어졌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뒤편 봉미산과 어색하지 않다. 다른 전각들도 적당한 크기로 지어져 한발 물러서서 봉미산, 신륵사, 남한강을 차례로 살펴보는 눈길이 편안하다.

극락보전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며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중생들의 안락을 돕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은 안락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 중생들을 반기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극락보전 뒤로 앞면 1칸, 옆면 2칸의 특이한 구조를 가진 조사당이 보인다. 고려말 고승(高僧) 나옹선사(1320-1376) 등 덕이 높은 승려 3명의 초상화를 모신 곳으로 조선 예종(재위 1468∼1469년) 때 지어져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됐다.

조사당까지 둘러보고 구룡루로 돌아나오면 왼쪽 언덕으로 향하는 10여m 길이의 돌계단이 나타난다. 돌계단 끝에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인 다층전탑이 서있다. 당시 사람들이 화강암과 벽돌을 얹고 진흙으로 사이를 메워가며 불심으로 세운 7단, 9.4m 높이의 돌탑이다.

다층전탑과 조사당, 극락보전 아미타불 등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다. 이밖에도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난 나옹선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 등 신륵사에는 모두 8개의 보물이 있다. 학술적·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곳이다.

다층전탑이 선 언덕 옆으로 남한강변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바위에는 6각형의 정자인 강월헌이 있다. 강월헌에 오르면 굽이도는 남한강의 절경이 펼쳐진다. 눈 내리는 남한강의 선경(仙境)까지 감상할 수 있을지는 각자의 복에 달렸다.

강월헌은 일출이나 낙조의 명소로도 알려졌다. 강월헌의 일출과 낙조를 보고 싶거나 신륵사를 떠나는 발걸음이 쉽지 않다면 템플스테이를 하면 된다.

템플스테이는 일주문에서 신륵사 중심부 사이 흙길 옆 전통 한옥에서 이뤄진다. 매년 4천여명이 머물고 간다. 겨울에도 1천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일주문부터 강월헌까지 겨울 신륵사 곳곳에는 고요함과 포근함, 멋과 운치가 가득하다.

겨울 산사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산에서 내려와 중생들을 맞이하는 곳. 천년고찰 신륵사의 겨울은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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