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02 (목)
希望歌(희망가)
希望歌(희망가)
  • 송종복
  • 승인 2016.01.20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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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希:희 - 바라다 望:망 - 기다리다 歌:가 - 노래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에 희망과 절망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탕자[탕아]들에게 왜놈들은 조선인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이 <희망가>를 유포시켰는데 우리는 알고나 불렸을까.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좌를 보아도 우를 보아도,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요즘 들리는 것은 우울한 절벽의 소리뿐이다. 유행어에 3포세대, 5포세대, 심지어는 7포세대까지 포기세대(抛棄世代)라는 신조어만 들릴 뿐이다. 따라서 출산절벽, 취업절벽, 경기절벽이라는 절벽세대에 ‘희망가’라도 언급해볼까 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이 노래제목을 <절망가(絶望歌)>, <실망가(失望歌)>, <천년경계가(千年警戒歌)>, <탕자경계가蕩子警戒歌>, <탕자자탄가蕩子自歎歌>, <일요일가(日曜日歌)>, <금주창가(禁酒唱歌)> 또는 <희망가(希望歌)>라고 부른다.

 이 가요는 암울하던 일제강점기, 희망은 없고 절망만 보이던 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퍼트린 대중가요이다. 이 곡은 1850년대 영국의 ‘포크댄스’ 곡인데, 이를 미국인 제레미아 잉갈스(Jeremiah Ingalls)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When we arrive at home)’라는 찬송가로 개작했다. 그 후 1910년에 일본으로 전래돼 자기의 슬픈 사연에 맞춰 불렸다. 당시 일본에서 강을 건너던 배가 뒤집혀 여학생 12명이 참사했다. 마치 우리의 ‘세월호’ 참사와 같았다. 그때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여교사 미스미스즈코(三角錫子)가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眞白き富士の根)’라는 내용으로 이 찬송가를 부른 것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 진혼곡이 유가족과 일본인에 많은 위로를 얻었다.

 이를 잘 파악한 일본은 일제에 신음하던 조선에 이 곡을 퍼트리면 위로가 돼 일제 압박을 상쇄될 수 있다는 심보에서 한반도로 유출시킨 것이다. 이에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 심정에 맞닥뜨린 것이다. 이로써 1920년대에 절망과 좌절에 시달리는 국민들 사이에 ‘망토’차림에 모자를 쓰고 대중가요로 부르다가, 1930년 최초의 대중가수 채규엽의 ‘레코딩’을 통해서 대중에 파고 들어가 인기가 대단했다.

 제목은 ‘희망가’이지만 가사는 우울하고 비탄적인 분위기로서, 다분히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사회를 반영해 한탄조의 현실 도피적 염세적인 색채가 짙다. 지난 1970~80년대 현실이 암울할 때도 유행한 바 있다. 한말에는 ‘망국가’가 등장했고, 일제시대는 ‘희망가’가, 1980년 광주사태 때에는 ‘아침이슬’이 유행했는데 요즘은 ‘절벽가’가 나오지 않을까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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