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8:44 (수)
顧母嶺(고모령)
顧母嶺(고모령)
  • 송종복
  • 승인 2016.04.27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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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顧:고 - 돌아보다 母:모 - 어머니 嶺:령 - 고개

 고모령은 경산에서 대구로 가는 낮은 고개이다. 일제 때 징병 가는 자식들이 탄 열차가 이 고개를 넘어갈 때 어머니와 자식 간에 생사고락을 나누는 애환의 고개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이 노래는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顧母嶺)’의 가사다. 이 노래는 일제시대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을 담은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행가다. 고향과 어머니를 버리고 징병 가는 아들의 애끓는 마음이 아주 잘 표현해 지금도 회자하는 노래다.

 이 고모령을 다룬 노래가 4편이나 된다. ①1946년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 ②1955년 역시 그가 부른 ‘잘있거라 고모령’, ③1965년 권미숙이 부른 ‘고모령 아가씨’, ④1969년 이미자가 부른 ‘고모령을 넘을 때’ 등이 있다. 요즘도 일요일마다 부르는 ‘전국노래자랑’이나, 월요일마다 부르는 ‘전국가요무대’에 이 고모령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이 고개는 한 많은 전설이 많이 실려 있기에 고모령노래가 나오면 뭇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많은 전설을 펼쳐보면 경북 경산군 시골에 한 여인이 살았다. 그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웠다. 아들이 장성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중 대구 감옥소에 수감됐다. 이에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다.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낮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면회하고 돌아갈 때 이 고개를 넘으면 대구가 보이지 않고, 또한 아들이 감방에서 얼마나 고초를 당하는 가를 생각한다. 이 때문에 자꾸 뒤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어머니(母)가 뒤돌아보는(顧) 고개(嶺)라는 뜻으로 고모령(顧母嶺)이라 했다.

 고모령은 대구시 동촌 인터불고 호텔과 만촌 자전거 경기장 사이의 고갯길이다. 일제강점기 때 징병과 징용 가는 자식들이 탄 열차가 고모령을 넘어간다. 그 당시 열차는 목탄을 사용했기에 높은 경사인 고모령을 넘기에는 더뎠다. 이때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든 어머니들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기에 부모와 자식 간에 이별의 생사고락을 가늠하는 한 많은 고모역(顧母驛)이 되고, 민족 애환이 쓰린 고모령(顧母嶺)이 됐다. 따라서 고모령하면 어머니가 아들을 향하는 모성애의 근원이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곳이 됐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한 번쯤은 답사해 산교육을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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