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3:33 (금)
한국판 ‘캥거루족’ 고찰
한국판 ‘캥거루족’ 고찰
  • 박춘국 기자
  • 승인 2016.05.09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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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편집부국장
 한국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면서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할 것’이라는 근자의 우려가 빗나가고 있다.

 최근 노인과 관련된 뉴스들이 한국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해 걱정이 앞선다.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의 청장년 10명 중 6명이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 집에 얹혀살거나 경제적 의존을 끊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뉴스가 그렇다. 이렇게 부모에게 업혀 사는 젊은이를 ‘캥거루족’이라고 한단다.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씁쓸하다.

 ‘캥거루족’과 함께 우리를 슬프게 하는 뉴스는 서양에서 날아들었다. 최근 발표된 유럽연합 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이 젊은층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젊은 근로자들이 연금 생활자보다 더 적게 벌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노년층은 은퇴 후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젊은 세대보다 더 적게 돈을 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5세 이상 인구와 나머지 인구의 소득 격차가 눈에 띄게 줄고 있어 노년층의 소득은 공적 연금, 개인연금, 투자 혹은 재취업을 통한 월급 등을 통해 높아지고 있단다.

 최근 미국 노인들의 예사롭지 않은 씀씀이가 해외토픽의 머리를 차지한다. 미국의 중산층은 무너졌지만, 노인들의 소득 수준은 이전보다 나아져, 최근 퓨리서치센터 조사를 보면 중산층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2015년 18%로 1971년보다 두 배가량 증가했다. 경제력이 커진 노인들이 미국 경제에서 점점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매킨지연구소는 향후 15년 동안 60세 이상 노인들이 미국의 소비 성장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노인들은 특히 의료나 개인 돌봄서비스, 주거, 음식,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지갑을 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기업들은 의류부터 스마트폰까지 노인 친화적인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는 등 노인층 공략에 적극적이다. 화장품 회사 로레알은 70대 여배우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면서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체질이 유럽과 미국을 닮아가고 있기에 이들의 사정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최근 미국 통계국은 한국이 2050년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년층 비율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의 노인들도 유럽과 미국처럼 경제활동의 보폭을 넓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경남을 비롯한 전국 대다수 신도시에 들어선 상가와 근생시설에 자리한 점포들의 등기부를 열람하면 5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이른바 ‘한국판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독점해서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임대료가 은행이자 수익을 웃돌 때 매입한 뒤 임대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임대소득을 갈수록 늘려가는 한국의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꺼리는 일들도 도맡아 하고 있다. 전쟁을 겪은 이들은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젊은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직업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자녀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력을 가진 노인층을 겨냥한 실버타운이 수도권을 시작으로 지방으로 확산하고 있다.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멋진 노후를 설계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부모세대를 믿고 게을러지는 것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젊은이들의 부모 의존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병폐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 이들이 노인이 된 이후의 세상이 걱정스럽다. 우리 사회와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할 묘안을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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