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30 (토)
오늘,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오늘,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6.05.22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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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야, 기분 좋다”는 말로 귀향의 심경을 표현한 노무현 전 대통령, 오늘(5월 23일) 그 대통령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 하늘나라로 간지 벌써 7년째 되는 날이다.

 권위주의 해체라는 시대적 과제를 가장 분명하게 말과 행동에서 실천했고 인권변호사로, 청문회 스타로, 그의 삶은 풍운아 같은 파란만장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가슴에는 그리움으로 녹아있고 독특하고도 아름다웠던 발자취는 희망과 빛이 되고 있다.

 갈등과 격차가 더해지는 요즘, 심화되는 양극화도 문제지만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특권층의 갑(甲)질에 있다. 때문에 그의 소통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그가 추구한 사회, 사회가 발전할수록 공적 의식도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1대 99의 극단적 상황에서 모든 가치가 상업적 이윤추구 및 경쟁 논리에 압도된 탓으로 몽고식품 회장, 인하대 총장, ‘4월 졸업식’ 반대 학생에 “박사학위 안 돼, 은행원에 웃음 강요 행패 부린 고객, 하도급 관행 시정에 한 달 뒤 공지 없이 거래 중단, 대림산업의 재벌 3세 부회장의 운전기사에게 상습 폭언ㆍ폭행 등이 끊이질 않는다. 때문에 한국사회가 너무나 쉽게 남을 모멸하는 현 상황을 반드시 벗어나야만 한다.

 또 그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관 변호사 수임료 문제를 예견한 듯하다. ‘운명이다’에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변호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오히려 해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변호사는 대체로 돈 있는 사람 편이 돼서…’라는 대목이 있다.

 최근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도박으로 구속된 화장품 사업가에게 보석 허가를 장담하며 50억 원을 받았다(30억 원은 반환했다). 이 사업가가 수사받을 때 사건을 맡은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는 “내가 받은 것은 1억 5천만 원”이라고 해명했다. 소문처럼 수임료가 많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가 꿈꾼 세상은 오지 않았다. 더욱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의 삶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고졸 대통령이 될 때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어느 누구도 감내하기 힘든 길이었다. 그 풍운아적 삶은 1975년 고졸 출신 판사로 부임한 후 7개월 만에 그 직을 떠나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시작됐다.

 서민의 희망이었고 꿈을 심어준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1987년에는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되어 제3자 개입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인 노무현의 길에 나섰다. 초선의원 시절인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 때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또 지방색으로 덧칠돼 당선이 희박한 정치현실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연이은 낙선의 길을 스스로 택한 그였다. 그는 2002년 민주화 세력을 기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지나온 길만큼이나 순탄하지 않았다. 선거법 위반, 국정경제 파탄 등 이유로 제16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04년 3월 12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한 5월 14일까지 63일 동안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첫 대통령의 길도 걸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잇따랐고,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만에 그는 대통령에 복귀하게 됐다.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임기를 마친 그는 귀향, 오리농사ㆍ마을 청소에 참여하는 등 평범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5월 23일,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라는 메시지만 남기고는 홀로 떠났다.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남겼다지만 20년 정치 인생스토리는 충돌과 도전의 역사며 도덕성이 힘의 근원이었다. 재임 중 그가 추구한 서민을 위하는 길, 깨끗한 정치는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서거 7주기에 앞서 사저가 개방돼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어디에도 ‘중국 진시황이 살던 아방궁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았다. 생전 삶의 소박함이 묻어 있는 곳, 어디를 아방궁이라 했는지….’ 영욕으로 가득 찬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비극적 선택을 택했지만 그가 추구한 가치와 발자취는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잠시 슬픔을 거두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대통령님, 당신이 꿈꾼 나라 아직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늘,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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