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11 (토)
일본 처녀와 위안부 할머니
일본 처녀와 위안부 할머니
  • 박춘국 기자
  • 승인 2016.05.23 2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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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편집부국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한다. 과거 일본군의 포로였던 미국 재향 군인이 동행한다는 소식도 있다. 오바마는 22일 방송된 NHK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의 와중에 지도자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검증하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이번 방문에서 (원폭)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말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 일본에 방문했을 때 히로시마 방문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히로시마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전쟁의 비참함을 호소하고 목숨을 잃은 시민들을 추도할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지만 사과할 생각은 없다는 오바마의 태도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앞두고 주일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몰려있는 오키나와(沖繩)현에서 지난달 28일 스무 살 일본 여성이 미 해병대원 출신의 군무원(32)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터졌다. 체포된 용의자 S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했다고 진술했으며, 살해 및 시신 유기에 대해서도 사실상 인정했다고 NHK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S 씨가 면식도 없던 피해자를 노린 점,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조작해 생존한 것처럼 가장하려 한 정황 등이 경찰 수사로 밝혀진 것은 오키나와인들의 슬픔과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피해자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는 21일에도 헌화 등을 하려는 추도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또 오키나와와 도쿄 등지에서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용의자가 근무한 오키나와 주일 미군 가데나(嘉手納)기지 앞에서는 지난 20일 현민 250명이 시위를 벌이며 ‘미군기지를 용납할 수 없다’고 외쳤다. 오키나와의 16개 시민단체는 ‘오키나와에서 모든 기지ㆍ군대를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요망서를 연명으로 작성, 주일 미국 대사관과 일본 정부에 보낸다고 20일 발표했다.

 위안부 피해에 대한 사과와 보상에 미온적인 아베 총리도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매우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앞으로 철저하게 재발방지책을 미국 측에 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아베 총리는 G7 회의를 계기로 오는 26일께 열릴 미일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베와 오키나와 현민들이 자국 여성의 미국인에 의한 성폭행 사망 사건을 두고 핏대를 세운 그날 경남 남해군에서는 가슴 찡한 일이 있었다.

 건강이 여의치 않아 지난해 8월 제막한 남해 숙이공원 소녀상을 찾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가 지난 20일 95번째 생일을 맞아 남해군수의 손을 잡고 회한의 장소에 도착했다.

 이날 박숙이 할머니가 숙이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소녀상의 손을 꼭 잡고“니도 숙이가? 내도 숙이다!”라며 첫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지켜보는 모두의 눈시울을 적셨다. 동행인들과 함께 박숙이 할머니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22년 남해군 고현면 관당마을에서 태어나 살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6년간의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은 박숙이 할머니는 건강이 좋았을 때 늘 지역 학생들에게 “나라 없는 설움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당시를 살았던 나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모두 나라가 없어져 생긴 것”이라며 “부디 열심히 공부해 다른 나라 사람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큰 사람이 돼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는 군청 직원의 전언은 젖은 눈시울을 더 붉게 만든다.

 미군에게 처녀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온 국민이 미국을 상대로 분노와 적개심을 보이는 일본이 어찌 꽃다운 나이에 전장으로 끌려가 어린 영혼이 짓밟힌 우리의 처녀들에게 사과를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왜 미국을 상대로 분개하기에 앞서 조선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을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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