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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는 백성 다스리지 못해
힘으로는 백성 다스리지 못해
  • 권우상
  • 승인 2016.07.14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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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중원을 호령하던 진(秦)나라의 시황제가 죽자 아들 호해(胡亥)가 황제가 돼 모든 권력은 이사와 고조가 틀어쥐었다. 차남인 호해가 황제에 오른 것은 이사와 고조가 권력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사와 국무를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고 황제에게는 반대파를 살육하는 사건만 사주했다. 진나라가 극도로 혼란해지자 산동과 산서와 호남과 호북 각처에서 육국(六國 : 楚ㆍ燕ㆍ濟ㆍ韓ㆍ魏ㆍ趙)의 후손들이 의병을 일으켜 점차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유방은 진나라에서 하급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패령의 명령을 받고 복역수들을 압송해 여산 공사장으로 가게 됐다. 그런데 도중에서 도망가는 자들이 많았다. 풍서에 도착한 유방은 남은 죄수들을 모아 놓고 보니 몇 사람 되지 않았다. 당시 진나라의 법률에 따르면 죄수들은 호송하다가 놓치면 중벌을 받게 됐다. 유방은 남은 죄수들을 모두 도주시키고 자신도 도망치려고 하자 장정 십여 명이 유방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십여 명으로 시작된 유방의 추종자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세력이 강해졌다.

 이때 진나라의 학정에 백성들이 시달리자 소하와 조참이라는 두 장수는 의병을 일으킬 생각을 해 망탕산에 숨어서 세력을 규합하던 유방과 합세했다. 유방의 세력이 더욱 강대해지자 점차 의병의 수가 늘어났고, 패현의 현령이 유방과 합세하면서 유방은 패현의 현령이 됐다. 그리고 백성들을 효(孝)와 인(仁)으로 다스리고 화목으로 어진 모습을 보이자 많은 백성들이 유방에게 모여들면서 삼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됐고, 진승과 화합해 제나라를 공격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반면 항우는 숙부인 항량과 함께 회계 땅에 숨어 세력을 규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항량은 회계 태수 은통을 죽이고 태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항우에게 은통을 죽일 명분을 찾으라고 지시하자 항우는 은통이 내심 군사를 일으킬 생각이 있음을 알고 은통을 꾸짖었다. “너는 진나라의 녹을 먹으며 태수 신분으로 반기를 들려고 하니 대역무도한 역적이로구나! 나는 너 같은 역적들을 징계하는 표본으로 삼겠다!” 항우는 장검으로 은통의 목을 치고는 태수의 자리를 항량에게 넘겨 주었다. 이렇게 해서 항우는 힘으로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어느 날 항우가 천하장사라는 말을 듣고 모여든 의병들은 항우에게 얼마나 힘이 센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항우는 일행을 데리고 우왕묘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우임금 때 주조된 것으로 한꺼번에 천명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큰 가마솥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무게가 몇 천근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항우는 그 가마솥을 쓰러뜨렸다가 다시 일으키고 일으켰다가는 쓰러뜨리기를 세 번까지 반복하더니 솥을 번쩍 들어 묘 주변을 몇 번 돌더니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이를 본 일행들은 입이 딱 벌어져 감탄의 소리를 연발했다. 이 자리에서 항우는 장군으로 추대됐고, 그가 천하장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지에서 의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어느덧 항우는 팔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됐다. 그런데 유방과 항우는 군사를 통솔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이 달랐다. 유방은 인(仁)과 예(禮)로서 군사와 백성들을 다스렸지만 항우는 오로지 힘으로만 군사와 백성들을 다스렸다. 특히 항우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칭송하지 않으면 가까이하지 않는 등 핍박을 가했다. 그러다 보니 항우 수하의 장수들이 등을 돌려 유방에게 가는 일도 있었다. 명장 한신이 유방에게 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방은 본래 싸우는 일보다 인의(仁義)에 치중해 인재를 대우하고 백성들을 사랑해 여겨 군신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

 반면 항우는 성질이 포악하고 위엄만 내세워 누구나 감히 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 무렵 “좋은 새는 나무를 골라서 깃들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가리어 섬긴다”는 말이 널리 퍼지면서 태수나 현령들이 유방과 항우 양편으로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모사 장량과 명장 한신이 유방의 편에서면서 결국 초나라 항우는 한나라 유방에게 패해 죽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仁)과 예(禮)가 없는 힘으로는 백성을 다스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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