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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
무더운 여름,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6.07.31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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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 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우리는 말의 풍경 속에서 허언과 망언, 상식을 벗어난 막무가내의 강변이나 공적인 책임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는 일그러진 담화, 그리고 뒤틀린 논리와 궤변에 분노하고 있다.

 때문에, ‘말을 위한 기도(이 해인 수녀)’를 소개한다. 교육부 정책기획관 “민중은 개ㆍ돼지, 신분제 공고화해야”는 ‘망언’ 중 ‘최악’으로 당분간은 이를 뛰어넘을 망언이 없을 정도로 파장도 커서 파면됐다. 국방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은 군에 입대한 병사가 선임들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작은 것’이냐는 항의를 불러왔다. 또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 한다”며 염장을 찔렀다. “천왕폐하 만세” 발언 의혹 등 너무 말이 되지 않아서 들으면 화가 나는 망언이나 막말을 ‘한국이 1%’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몰상식의 언어를 사용, 망령되게 말’하는 게 일상화된 듯하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을 듣고 모두 분개했다.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 속에 국민들은 이 무더운 계절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국내외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불쾌지수만 돋운다. 거기에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더해지면, 화병마저 날 지경이다. 톤을 최대한 낮춰 말하려고 하지만 격정 토로는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지난 8일 외교부 장관이 사드 배치 발표 시간에 강남의 모 백화점을 방문, 구설수에 올랐고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은 꽃보직에도 일주일에 한 번 꼴의 외박으로 ‘신의 아들’로 등극했다. 연이은 법조비리 사건에 국민은 더 이상 사법부를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이 판에 “그럼, 그럼, 그럼, 그럼(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VIP의 뜻이냐”는 물음에 답한 말이다. 이어 또 다른 실세, “내가 대통령 뜻이 어딘지 알잖아,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 아이?(윤상현 의원)” ‘대통령 뜻’이라며 지역구 변경 압박 회유 전화‘를 한 공천 개입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새누리당은 시끄러웠다.

 이제 8월 초입인데, ‘높은 분’이 쏟은 ‘말’이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데 아주 큰 기여를 해서야 쓰겠는가. 이런 국가에서 약자는 누가 보호하고 악인은 누가 처벌하나. 열 받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 없다는 것에 있다. 말을 가려하지 않는 것은 권력에 있다. 앞으로는 각자도생을 위해 정제되지 않은 말이 쏟아질 것이다. 벌써 레임덕 조짐이 일고 갈 길이 어깨너머에 걸쳐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한 ‘말’의 혼란은 옳지 않다. 영화, 부산행 KTX 열차는 각자도생의 재앙을 싣고 달린다. 각자도생하려는 우리 사회와 꼭 닮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따끔한 경고를 날린다. 각자도생은 필연적으로 파멸을 낳고 재앙을 가져온다. 영화의 참사는 좀비 그 자체가 아닌 각자도생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됐다.

 선한 말은 피스 메이커(peace maker)돼 화평을 이끌어 내지만 막말, 악한 말은 피스 메이커(piece maker)돼 분열과 분쟁을 만들 뿐이다. 때문에 ‘말’로 인해 국민적 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려는 대화(말)가 더욱 요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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