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베니스’로 불린다는 네바강 양안은 그 이름대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바로크 양식과 순수 신고전주의 양식들이 조화를 이룬 이 도시는 서유럽 건축 양식뿐 아니라 자유주의 사상도 일찍 받아들인 곳이라고 했다. 네바강에는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잠수함과 거대한 전함들이 여러 척 떠 있었다. 유람선을 탄 일행들은 구축함과 그 위에 높직하게 선 수병들을 올려다보며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유람선이 다리 아래를 지날 때마다 다리위에 선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줬다.
어린 시절 책이나 영화로 보았던 러시아는 말 그대로 ‘철의 장막’이었다. 무시무시한 전함과 강력한 무기를 가진, 가까이하기에 너무나 두려운 사람들로 각인돼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본 러시아는,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연 모습이었다. 해군의 날을 홍보하는 광고판 앞에는 사진을 찍는 연인들이 줄을 잇는가하면, 세계 3대 박물관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끝없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러시아 혁명이 촉발됐다는 역사적 현장인 겨울궁전 광장에도 갖가지 행사가 음악들과 뒤엉켜 도시는 한 덩어리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에는 주류인 러시아인을 포함해 130여 종이 넘는 민족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다민족국가라고 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러시아의 면적은 지구의 1/8을 차지하며,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석유와 천연가스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줄 정도이고, 타이가는 자작나무와 적송을 키워내는 삼림자원의 보고라고 한다. 그 나라 자체의 잠재력이나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가능성이 무한해 보여, 어느 곳을 가건 가는 곳마다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어린 시절, 왜 이렇게 어른스러운 푸시킨의 시를 외웠는지 모르겠다.
8박 9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생각하니, 여행하기 전후의 러시아는 많이 달랐다. 러시아 시인의 시처럼, 삶이 그대를 속이지 않게 하려면,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여행을 더 많이 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