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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 ‘거시기’ 대물 맞나
지증왕 ‘거시기’ 대물 맞나
  • 송종복
  • 승인 2016.08.15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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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우리나라 남성의 ‘대물(大物)’에 대한 문헌은 지난 1281년 고려 승려 일연(본명:김견명)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이 책은 고조선부터 삼국시대까지 다양한 신화, 설화 등이 기록돼 있다. 속어로 남성의 거시기를 ‘물건’이라 하며, 그 중 제일 큰 것을 ‘대물’이라 한다. 그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모양도 별의별 형태이다. 그런데 그 크기가 작은 남성들 중에는 ‘왜소 컴플렉스’가 있어 대물 갖기를 원하며, 심지어는 의술로 보상하려한다.

 뉴욕주립대학 고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성기가 버섯처럼 생긴 이유는 바로 다른 남성이 사정한 정자를 긁어내기 위함이라 한다. 따라서 대물일수록 그 효과가 더 좋았을 것이다. 때문에 원시시대는 대물을 가진 남성이 최고라고 보여진다. 이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DNA를 퍼뜨리려는 종족 번식에 대한 원초적 본능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기록 중 ‘대물’로 지닌 자는 신라 22대 지증왕이다. 왕의 성은 김(金)씨,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며, 신라 최초로 지증(智證)이라는 시호를 얻었다. 이 왕의 성기 길이가 1자 5치(45㎝)나 돼, 그에 맞는 신붓감을 찾기 어려웠다. 신하들이 신붓감을 찾아다니는 도중 경주 남산의 모량리(현, 경주시 건천읍) 밭에 어마어마한 똥 덩어리가 나타났다. 개 두 마리가 서로 다투는 광경을 보고는 그 똥의 주인을 수소문한 끝에 박등혼의 딸임을 알았다. 그 녀는 키가 7자 5치(220㎝)나 됐다. 그를 간택해 왕비로 삼으니, 그 녀가 곧 23대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부인 박씨이다.

 지증왕은 대물의 덕분인지 몰라도 치적이 왕성했다. 종래에 신로ㆍ시라ㆍ서나ㆍ서야ㆍ서라ㆍ서벌ㆍ서라벌ㆍ계림 등으로 불리던 국호를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신(新)], 사방을 망라한다(라(羅)]’는 뜻의 ‘신라’라는 국호를 만들고, 마립간을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고, 전해오던 순장(殉葬) 풍속을 폐기하고, 상복법을 제정하고, 소를 밭갈이에 이용하는 우경법도 만들었다. 왕권도 중앙집권으로 통치했다. 이같이 대물과 성공은 무슨 연관관계가 있지 않나 말하고 있다. 그 예로 경주의 천마총에서 나온 왕관과 요대의 크기를 보아, 이 시신은 아마 대물을 가진 지증왕이 아닌가 해, 이 천마총의 주인공이 바로 지증왕 무덤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편집중인 <민속대백과사전>에 ‘감기’의 어원에 대해 말 하고 있다. 즉, ‘성기 두 개’ 달린 왕자가 살았다. 이 왕자는 혼기가 차서 ‘성기 두 개’ 달린 처녀를 찾지 못해 한으로 죽었다. 왕자는 죽어서 사람의 콧구멍에다 생전 채우지 못한 생리욕구를 풀고 다니는 ‘고뿔’ 귀신이 됐다. ‘고뿔’은 ‘코’와 ‘불’이 합쳐진 말로 코에서 불이 나는 것처럼 뜨겁다는 감기(感氣)의 증세를 표현한 말이다. 이 왕자는 구멍이 두 개인 콧구멍에, 자신의 두 개의 거시기로 생리욕구를 풀기 때문에, 코가 막히는 증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감기가 걸리면 코가 막히고, 이후 콧물이 흐르면 숨을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이 감기이다.

 이로 보아 대물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 신라 지증왕과, 통일신라의 선덕여왕, 가락국 김수로왕과 왕비도 대물을 지닌 것으로 전한다. 오늘날 ‘사우나’에서 대물을 가진 남자들은 어깨에 힘을 잔뜩 줘 보란 듯이 헛기침을 한다. 반면 왜소한 성기를 가진 남자들은 위축감에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침묵한다. 사우나에서만큼은 대물을 가진 남자들이 모든 것을 소유한 왕이다. 지증왕의 ‘거시기’는 오래전부터 남자들이 꿈꾸는 대물신드롬이 아닐까. 대물을 지녀야 천하를 호령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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