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매일
뉴스 기획ㆍ특집 사람&사람 오피니언 교육소식 투데이+ 커뮤니티
인기검색어 : 김해시, 경남과기대
자세히
  •  
> 뉴스 > 오피니언 > 송종복의 한자와 역사 이야기
     
彌阿里(미아리)
2016년 08월 17일 (수)
송종복 sojobo@hanmail.net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彌:미 - 오래 阿:아 - 언덕 里:리 - 마을

 이 고개는 원래 ‘되너미고개’라 했다. 병자호란 때 ‘되놈[胡人]’들이 넘어왔다가 넘어갔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되너미재, 적유현, 유현, 돈암동고개, 돈암현고개라 한다.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해매일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이 고개는 사연도 많고, 한도 많은 고개로 통상 ‘미아리고개’라 한다. 1956년 발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재호가 작곡하고 가수 이해연이 불렀다.

 ‘미아리’는 낮은 고개로 돈암현(敦岩峴), 적유현(狄踰峴), 호유현(胡踰峴)이라 한다. 원래는 ‘되너미고개’라 하는데, 이는 ‘되놈[胡人]’들이 넘어왔다가 넘어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노래의 작사인 반야월은 1ㆍ4후퇴 뒤에,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서울로 돌아와 보니 미쳐 서울을 탈출하지 못한 부인은 영양실조로 병석에 누워 있었고, 둘째 딸 수라(4세)는 숨졌다. 딸은 입은 옷 그대로 언 땅에 묻었다는 사실을 아내로부터 전해 듣고, 창자가 터지는 듯 아픈 마음을 노래 가사로 지었다.

 ‘미아리’는 6ㆍ25전쟁 때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서울로 내려오는 길목이다. 인민군의 탱크에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6월 27일 미아리전투에서 패배하고 서울이 함락됐다. 6월 27일 밤 10시부터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오에서는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방송했다. 따라서 시민들은 피난 가지 말고 서울을 지키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승만은 이미 27일 새벽에 서울을 빠져나가 대전에 있었다. 서울에 없으면서 녹음테이프만 돌려준 셈이다.

 서울의 관문인 미아리에서는 적군과 아군의 격전이 치열했다. 이때 시민들의 고통과 슬픔이 창자를 끊어내는 듯하여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라 했다. 미아리고개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남편을 부르고, 이승만을 부르는 비극의 장소였다. 그 후 퇴각하던 인민군은 반공인사 2만여 명을 처형시킨 곳이요, 주요 인사들을 강제로 끌고 간 고개이다. 끌려가는 인사들은 가족과 마지막 배웅을 받으며 생이별을 하던 곳이다. 또한 병자호란 때도 이 고개를 통해 조선인을 수없이 끌고 간 곳으로 민족의 애환이 쓰린 고개다. 노래가 말하듯이 슬픔과 눈물과 원한이 맺힌 고개가 ‘미아리’이다. 다시는 그런 고통 없는 평화스러운 고개가 돼야 하고, 노래 또한 사랑과 희망에 찬 고개로 변신하기 바란다.
송종복의 다른기사 보기  
ⓒ 경남매일(http://www.gnmaei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광고단가표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최종편집 2017.7.27 목 22:25
주소 : 김해시 외동 금관대로 1125 6층|우편번호 : 50959|대표전화 : 055)323-1000|팩스번호 : 055)323-3651
Copyright 2009 경남매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nmaeil.com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최용학
본 사이트에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소유하며, 발행인의 사전 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