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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6년 만에 또 마주하는 망령
경술국치 106년 만에 또 마주하는 망령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08.28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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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5천년 한민족 역사에 있어 씻을 수 없는 굴욕, 일제의 식민지배를 가져온 경술국치가 106년이 흘렀지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혹하기만 하다. 강대국을 옆에 둔 약소국은 굴종이 숙명처럼 따라붙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사의 교훈이다. 사드를 둘러싼 미ㆍ중간의 각축전이 그렇다.

 사드는 우리가 필요해서 한 선택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둘러싼 미ㆍ중간의 힘겨루기 결과다. 사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의 한 축이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의 태도다.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은 미ㆍ중간에 줄타기를 하다가 인내심이 바닥난 미국의 최후통첩에 굴복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북한 핵 위협은 어쩌면 본질이 아니다. 사드 철회를 요구하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으로서는 사드가 유사시 커다란 위협이 되는 핵심적 안보이익이다. 엄청난 판돈이 걸린 도박판에 얼마 안 되는 판돈을 갖고 반강제적으로 끼어든 것이 한국의 처지다.

 미ㆍ중은 관계가 험악해질수록 우리에게 더욱더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우리가 양다리를 걸칠 여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약소국의 자기비하적 숙명론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다. 말이 균형외교지 미국도 중국도 우리의 모호한 자세를 그냥 두고 볼 리는 없다. 어쩌면 사드는 그 시작일 수 있다. 결국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극단적 양자택일의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로서는 어느 쪽으로든 기울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선택하지 않을 경우에는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그 이유는 오랜 역사와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강성할 때마다 한반도를 침범하거나 굴종을 강요해 왔다. 한나라가 그랬고 수ㆍ당이 그랬다. 이민족이 세운 원과 청도 마찬가지였다. 명나라는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에 굴종을 강요하며 대국의 힘을 과시했다. 공산화된 중국은 6ㆍ25 때 북한을 원조하며 역시 침범했다.

 도광양회(韜光養晦)한 현재의 중국은 어떨까.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중국의 정부와 인민이 보여준 태도는 역시 강대한 중국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닐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드 배치가 한중관계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다는 주한 중국대사의 협박이나 아직은 민간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런저런 경제적 위협은 장차 중국이 우리에게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읽기에 충분하다.

 혹자는 말한다. 그러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전쟁을 하자는 말이냐고. 중국을 선택할 경우 한반도의 운명은 중국 손에 넘어간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안보 주권은 중국이 쥐게 된다. 남북관계도 중국의 이해에 이끌려갈 수 있다. 21세기식 조공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주변국을 허용하지 않았던 게 중국의 역사다.

 미국은 중국과 다르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905년 카스라-태프트 조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겼고, 신탁통치를 통해 한반도를 쪼개는 주역이었다.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릴 때 한반도의 운명을 나락에 빠뜨린 나라이면서 6ㆍ25 때 한국을 구하고 빈곤에 허덕일 때 원조를 한 고마운 우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먼 나라라는데 있다. 미국은 적어도 중국과 같은 굴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최근 사드 배치로 중국이 위협을 가해오자 미국의 압박은 나쁘다고 하면서 중국의 그것에는 관대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경제와 전쟁위협을 이유로 내세운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국이 타격대상이 되고 북의 핵 위협이 보다 노골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적어도 미국은 한반도에 전화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들의 주장을 보면서 위협에 굴복해 나라를 판 을사오적이 생각난다.

 경제적 손실을 두려워하고 전쟁을 피하려 하면 굴종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가까운 적은 언제나 위험이 된다. 먼 적의 적과 유대하는 것은 약소국의 생존전략이다. 고금의 이치가 그렇다. 경술국치 110년 만에 또다시 마주하는 매국적 망령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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