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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이 주는 부정적 의미
반복이 주는 부정적 의미
  • 김혜란
  • 승인 2016.08.31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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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걸어도 걸어도’ 라는 일본 영화가 재개봉을 했다. ‘걸어도 걸어도’는 영화 속 노랫말이기도 하다. 영화 내용은 다르지만 노래가사로만 보면 ‘가도 가도 쉽사리 가까워지지 않는 사이’란 뜻 같다.

 말이나 글을 쓸 때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같은 단어를 되풀이한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거나, ‘진짜 진짜’ 좋아한다, ‘정말 정말’ 사랑한다거나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등등이 떠오른다.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나 현상에 대해 이런 표현을 자꾸 떠올리고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말을 훨씬 더 많이 쓰는 것이 아픈 현실이다.

 1년에 생활비를 5억 원 이상씩 쓰는 장관 후보는 ‘써도 써도’ 은행 예금이 늘어났다고 했다. 1년에 5억 원씩을 써보지 못해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를 많이 하는 일은 미덕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장관이 한 달에 100여만 원으로 살아내야 하는 국민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어떻게 ‘써도 써도’ 돈이 늘어나는 화수분을 가졌을까. 이쯤 되면 장관 후보나 국민 양쪽 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다. 상대방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 정부와 국민의 소통의 간격은 ‘가도 가도’ 끝없이 벌어지는 것 같다.

 또 다른 장관 후보자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아파트 한 채를 구했다고 한다. 건설사는 분양가보다 싸게 주고, 농협은 감정가보다 높게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농협의 특혜를 받아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3억 4천여만 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아파트 한 채 마련해보겠다고 몇십 년 꼬박꼬박 적금 붓던 국민들이 적금통장 따위 패대기 쳐버리고 싶은 심정을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국민의 마음을 모르는 자가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해도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후보자의 지난 행적이다.

 ‘돈 돈’ 이야기만 하지 말자. 사드 배치문제로 성주 군민들이 심상치 않다. 국방부가 절대 바꿀 수 없다던 애초의 배치 예정지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다른 곳을 물색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성주 군민들뿐만 아니라, 안보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조차 사드 배치를 바라보는 눈이 좋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부가 혹세무민(惑世誣民)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국민이나 군민들의 생각은 한 번도 타진하지 않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는 도저히 결정 내릴 수 없는 일이라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반드시 국민은 책임 있는 결론을 내릴 일이었다. 역시 ‘해도 해도’ 국민을 무시한 일이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맞서 우리도 핵잠수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혼자서 이런 일을 추진하는 것이 기술적ㆍ정치적으로 가능한지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한국이 핵잠수함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도 생각지 않고, 그저 정치권을 중심으로 즉흥적이고 선동적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무엇인가 새로운 위협을 해 올 때마다 사드니 핵 잠수함 등을 들고나오는 것이 무슨 안보정책인가 묻고 싶다. 북한의 핵능력을 조금이라도 눌러 앉히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에 대해 생각은 해 봤는지 궁금하다. 그저 무기 개발이나 유치로만 맞선다면 결국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다 제쳐놓고 꼭 핵잠수함을 가져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국민에게 물어봐야 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눈치 보기 전에 국민들 생각부터 알아야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군에 드는 사람들이 움직이며 말을 쏟아내고 있다. 며칠 전 후보군에 드는 두 사람이 모여서 누군가가 4년 전에 들고나온 상대방의 공약으로 대화를 했다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 지금이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며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던가. 그게 그렇다. 4년 전 그때는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뒷전으로 밀어 둬야 할 국민의 현실을 왜 모를까. 그때 저녁의 여유를 그리워하던 중산층이 지금은 하층민으로 살고 있다. 지금 국민은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보다, ‘아침’에 출근하는 삶이 절실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다. 4년이나 흘렀다. 저녁의 여유가 아니라 아침출근부터 챙겨줬으면 싶다. ‘제발 제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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