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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2016년 09월 12일 (월)
박태홍 7618700@kndaily.com
   
▲ 박태홍 본사 회장
 이틀 밤만 자고 나면 추석이다. 추석이 되면 헤어졌던 가족들과 상봉하고 조상들에 대한 예를 올리고 차례를 지낸다. 자기 한 몸 누을 수 있고 찬바람만 막을 수 있는 곳에서 끼니만 해결되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았던 안빈낙도를 덕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은 가을 추수를 끝낸 풍성한 추석을 최고의 명절로 손꼽았다. 이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그렇게 되길 염원한 것이 추석이다.

 50년대만 해도 변변찮은 가정에서는 입하나를 덜기 위해 가족들이 헤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당시에는 허드렛일을 하는 가정부나 잡부들은 주인집에서 먹고 자는 것이 노동댓가의 전부이기도 했다. 힘깨나 쓰는 장정들조차 1년에 쌀 두서 섬이 노동댓가의 전부였다. 이 같은 일이 엊그제 같은데 5ㆍ16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하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먹고 자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진일보하기에 이르렀다. 가내수공업의 경제적 바탕을 조선, 철강 중공업 등으로 바꾸고 나아가서는 자동차 전자ㆍIT 산업이 성공하면서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다.

 이에 따라 노동의 댓가도 생활양식도 큰 차이를 나타낸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인권을 내세우고 민주화를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노동조합이다. 이는 노동자의 권익을 찾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동자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사 간의 대립은 끝이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노사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노동법이 개선, 발의된 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서로를 인정했다.

 그래도 노동자들의 쟁의 자체는 격렬했고 사업자 역시 부당 강제해고 등을 무기로 내세웠다. 궁극적인 목표는 돈이었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적 논쟁점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노사 간 여ㆍ야 모두 대의명분을 벗어난 행위로 상대를 몰아세웠다.

 우리 선조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뒤로하고 대의를 위해 사는 것을 중요시했다. 자기를 앞세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공의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배우고 실천했다. 관리들은 항상 솔선수범하는 것을 덕목으로 알았으며 민초들보다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이를테면 사회적 성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적 공감대가 그 시대에도 형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대부는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않았다’는 속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상은 어떠한가?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은 온데간데없고 정치인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자기 직무와 본분을 망각하고 일탈하고 있다. 이 같은 일탈 누수 현상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체육, 종교, 법조계 등 각계각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모 방송국의 보도에 의하면 최근 5년 동안 56명의 판ㆍ검사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거나 감옥에 갔다 한다. 이처럼 나라를 법으로 다스리고 민생규휼에 힘써야 할 지도자급 인사들이 법을 위반하고 있으니 후세들이 무엇을 본받고 배우겠는가? 게다가 여ㆍ야로 나눠진 정치인들 또한 물고 물리는 편싸움을 일삼고 있는듯해 안타깝다.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과거일 수 있는 조선시대에도 붕당은 있었다.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며 서로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짝을 이뤄 정사를 펼쳤다. 지금의 비박, 친박, 비노, 친노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서로 토론하고 타협하는 멸사봉공의 자세를 일관해왔다. 지금처럼 자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명분 없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이는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관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이는 뜻을 같이하는 붕당끼리라도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대의명분이라는 사상’에 길들여 있었기 때문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이 숭상했던 성리학적 가치관에만 집중된 대의명분 또한 다소의 결함이 없는 건 아니다. 충에 살고 효에 죽는 이들의 삶 자체가 시대적 이념이었겠지만 그때를 우리들은 한 번 더 곱씹어 보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오락가락하는 선택적 소신이 아닌 굳은 의지의 실천적 행동이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이긴다’가 아닌 이기는 것이 정의라는 요즘의 각박한 세태에서 우리들은 가까운 과거의 역사에서 배울 점을 간추려야 한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는 조선시대 사대부 사상을 이 시대의 지도자들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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