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04 (금)
다음 비 올 때 빗자루 들고 나오자
다음 비 올 때 빗자루 들고 나오자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10.09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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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초등학교 시절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날 때쯤인 아침과 저녁이면 빗자루를 들고 집 밖을 나섰다. 옆집 친구들도 하나둘씩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나를 포함해 개중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없지 않았지만 늘 그랬다. 지난 60~70년대 초반인 당시는 자동차나 광고전단지 같은 것이 없을 때라 거리에는 담배꽁초 외는 쓰레기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지만 하여튼 집앞 10~20m가량을 쓸었다. 쓸고 나면 삽작 밖 흙길이 마치 경지정리가 된 논처럼 빗자루 흔적이 질서정연한게 가슴을 뿌뜻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의 명령 때문이었지만 때론 내 스스로 하기도 했다. 어릴적 10분도 채 안 되는 그 시간이 당시는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다. 그저 시키니까, 그냥 해야하는 일인 것으로 알았으니까 했다.

 얼마 전 태풍이 왔을 때 외국인 세 모녀의 해운대 백사장 청소 뉴스를 접하면서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 것을 느끼면서 기쁜 마음과 복잡한 머리가 교차됐다. 왜 자기 집 앞을 쓰는 사람이 사라졌을까, 무엇이 눈청소를 두고 서로 싸울 정도로 이웃을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자기 집 앞 청소는커녕 몰래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비양심은 어디에서 자라났을까하는 것들이 머리를 어지렵혔다. 내가 그 원인을 진단하는 것은 괜한 짓이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삽작 밖 청소가 사라진 우리의 자화상은 작금의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모순과 결코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잘못한 내 자식 역성 드는 것도 모자라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내자식 내 가족 편하고 좋으면 그만인 세태, 눈이 와서 사람이 다칠 지경인데도 눈 청소는 관청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세태, 길이 막히든 말든 내 편한대로 주차하고 길을 막고 좌회전을 노리는 세태 등등 자신도 화내면서 아무렇지 않게 남을 화나게 하는 모습들은 사라진 삽작 밖 청소와 무관치 않다.

 옛날에는 가정집이든 가게든 공공기관이든 누구 할 것없이 자기 앞마당을 쓸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관공서도 청소부가 아니면 쓸지 않는다. 아파트는 경비원의 몫이다. 단독주택가 골목청소도 대개 시청 환경미화원의 몫이다. 아파트는 물론이고 단독주택에도 거리를 쓸 수 있는 빗자루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거리청소를 직업청소원의 몫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삭막하다.

 우리 사회의 공공의 이익에 대한 무감각, 모든 것을 내 이익으로 귀결시키는 이기적 계산머리는 적어도 내가 어릴 때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커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 ‘앞으로 나라에 큰 일꾼이 되라’고 격려했지 ‘돈 많이 벌어라’, ‘남보다 더 잘살아라’고 말씀하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적 삽작 밖 청소는 ‘내것이 아닌 우리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 ‘내가 살아가는 주변과 공존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때 엄마는 “집앞이 더러우면 지나가는 사람이 욕을 한다. 내 집 앞도 깨끗이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 무엇을 온전히 하겠나”라고 말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내 동네는 내가 청소한다는 것은 내나라는 내가 지키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내집 앞을 내가 내팽개치는 순간 우리동네는 없다. 최소한의 시민의식은 우리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일 것이다. 해운대 외국인 세 모녀는 이런 간단한 이치를 우리에게 온몸으로 보여줬다.

 가을 낙엽이 떨어질 때, 태풍이 불고 나서 거리가 더러울 때 너도나도 빗자루를 들고 나와 동네를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내집 앞을 쓸며 옆집과 이야기하고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생각한다고 상상해 보면 가슴이 뜨거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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