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배경은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통영 앞 바다. 견내량 전투를 앞두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과 수군, 그리고 전란에 어머니를 잃은 연희 진희 가희 세 자매가 직접 수군에 들어가 왜군을 물리칠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람으로 머리를 감고 비로 온 몸을 씻으며 손에 피멍이 들도록 노를 젓는 수군을 위해 장갑을 만드는 자매들 이야기와 물길을 잘 아는 백성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장군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간다. 말단 병사들의 의견이나 애로를 기꺼이 경청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학익진’이라는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왜군을 물리치는 충무공과 수군, 그리고 백성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승리의 날개 짓을 감동적으로 연출해 냈다. ‘충(忠)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며 백성의 말을 새겨듣고, 백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말 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리더십이야 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뮤지컬 ‘학의 날개’를 보는 내내 비슷한 시간대 광화문 광장에서 매 주말마다 백만의 국민들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는 현장이 수시로 오버랩 되면서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이른바 ‘학익진’ 작전지도라든지 ‘대동하야지도’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현실의 긴박한 정국상황을 생각하면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뚫린 듯 허탈한 상실감이 밀려온다.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행진해, 경복궁을 북쪽으로 에워싸며 학이 날개를 펼치듯 양 방향으로 진출해 살아있는 권력을 퇴진시키자는 국민운동을 벌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충무공 이순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독일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비스마르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탁월한 지도자를 향한 국민의 갈망은 동서고금 마찬가지다. 비스마르크는 작은 제후국과 자유 도시로 분열돼 있던 독일을 프로이센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재건한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19세기 중엽 유럽패권을 놓고 다투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독일이 유럽의 주도권을 쥐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외교력과 리더십 덕분이다. 20세기 독일은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전범 국가이며,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주범 국가였다. 전후 나라꼴이 엉망이 됐던 독일이 오늘날 불사조처럼 부활해 다시 유럽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온 국민이 군주의 거울로 삼을만한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아젠다가 제기되거나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해지면 국민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비스마르크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직면한 난국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간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대사를 통틀어 우리에게는 군주의 거울로 삼을 만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400년 전 충무공 이순신의 탁월한 레거시를 남긴 지도자가 있다. 뮤지컬 ‘학의 날개’를 관람하면서 온 국민이 질서 있게 나라를 바로 세우려 스스로 몸부림치는 행위야 말로 이순신이라는 군주의 거울을 찾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나마 위안이 됐다. 활짝 펼친 학의 날개가 아포리아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