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1:51 (목)
차가운 송년
차가운 송년
  • 이주옥
  • 승인 2016.12.13 2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주옥 수필가
 김영란법이 시행 된 지 두 달여 됐다. 나라가 온통 대통령으로 인해 어수선하다 보니 그 법률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같다. 간간이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내용도 미미할 뿐이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공무원 등은 올해는 송년회나 신년회 약속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나자는 전화도 뚝 끊겼다고 한다. 음식점 종사자나 공무원들은 “청탁금지법 시행에다가 최근 최순실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하고 불경기까지 이어지는데 송년회는 무슨 송년회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흥청거리는 연말 풍경보다 더 낫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위축된 분위기가 국민들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밀려드는 송년회식으로 업무는 거의 마비상태일 정도였다. 학교 동창회부터 자잘하게는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까지 의무도 아니건만 송년 또는 망년을 외치고 연례행사처럼 치러내고 한 해를 마무리했다.

 얼마 전 나는 이른 송년회 하나를 마쳤다. 중등 친구들끼리 자그마한 운동장을 빌려 손수 마련한 먹거리와 간단한 구기 종목으로 운동하면서 기분 좋게 스타트를 끊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마침 첫눈까지 펑펑 내려줘서 그야말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참석자는 예정된 숫자의 반밖엔 안 됐다. 피치 못할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처해있는 현실의 벽이 그나마 발길을 막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거나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편이 아니라 송년회라 해봐야 기껏 친구들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날짜를 잡지 않는 모임이 몇 개 남아 있다. 누구든 선뜻 나서서 분위기를 잡기에는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자꾸 마음이 오그라드는 현실도 문제일 것이다.

 송년회의 이미지는 대충 부어라 마셔라 하며 반짝거리는 네온사인에 비틀거리는 몸짓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마음의 여유와 주머니 사정이 여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일탈이리라.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그런 흥청거림의 뒤에서 치다꺼리나 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뜩이나 국가적 위기에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여유조차 잃어버린 것 같다. 주말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또는 가족들과 함께 집회에 가는 것이 수순처럼 된 듯하다. 술자리에서 왁자지껄 언성을 높이며 울분을 토하는 대신 축제 같은 시위현장에서 소리 높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추운 거리에서 체온을 나누고 있다.

 국가이건 개인이건 한 해의 끝은 지나온 1년을 반추하는 시간이다. 세밑의 송년회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가오는 내년을 준비하는 원론적인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마주 앉은 자리엔 분노와 답답함만 충천할 뿐 도무지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분위기다. 털어버릴 것이 얼마나 많은 시국인가. 대한민국은 2016년 한해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였다. 시간이 흐른 먼 훗날에도 차마 들춰보기 싫은 치욕스런 한 해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기를 써도 국민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거나 닿지 않는 안갯속이다. 아득한 낭떠러지 끝에서 끌어올려 주라고 소리 지르지만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는 형국이다.

 무엇인가 개전의 용이 보일 때 변화도 비틀거림도 아우성도 희망이 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떤 기다림이 있을 때 다시 힘을 내서 시작할 수 있다.

 조금 흥청거림이 있고 조금 산란해도 예전 그 송년의 대한민국 모습이 그립다. 털어내고 끝내면 다시 채워지고 시작되리란 시간의 흐름을 믿고 다시 새 해를 향해 마음을 다잡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지금의 현실을 의연하게 극복하며 다시 힘을 얻는 송년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