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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 속 ‘희망’
판도라 상자 속 ‘희망’
  • 한중기
  • 승인 2016.12.20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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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기 두류인성교육연구소 소장
 AI로 시작된 병신년 한 해가 촛불과 AI로 저물어 가고 있다. 지난 3월 초 이세돌과 알파고의 역사적인 대국을 앞두고 전 세계가 비상을 관심을 쏟고 있는 ‘기계 교감시대’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인공지능(AI)의 발전을 희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류를 초월하는 ‘특이점’이 되지 않기를 소망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딥 러닝’으로 무장한 AI 알파고의 가공할만한 발전은 최고의 수를 가졌다는 바둑의 위상을 순식간에 허물어 버렸다. 우리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대결을 가슴조이며 지켜봤다. 한 차례 승리에 흥분하면서도 전체 승부에서 이세돌, 아니 인간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인공지능, AI의 능력을 시샘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둑은 또 다른 희망을 찾았고,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발전의 촉진제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위기 속에는 늘 기회가 있고 희망이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인공지능 AI에 대한 관심 역시 최고조에 달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사이 겨울의 불청객 정도로만 여겨졌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 달 새 국가적 재앙 수준으로 비화됐다. 지난 11월 16일 전남 해남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된 이후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로 한 달여 만에 무려 2천만 마리에 가까운 가금류가 살 처분 됐다고 한다.

 매일 평균 60만 마리씩 도살 처분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란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대형마트에선 ‘계란 제한 판매’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정부 당국은 뒤늦게 계란을 수입하겠다는 뒷북을 치고 있다.

 정부 당국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지난 2014년 최악의 피해를 냈던 H5N8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도 창궐하기 시작해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두 가지 형태의 AI가 동시 발생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니 걱정이다.

 그렇게 많은 가축이 죽어가는 동안 우리는 뭘 했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AI가 발병한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11월 21일 일본 돗토리현에서 AI가 발병하자 일본 정부는 곧바로 최고 수준의 위기경보를 내렸고, 확진 판정 2시간 만에 아베 총리가 관저에서 위기관리센터를 가동했다.

 다음 날 오전에는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100만 마리 정도의 살처분에 그쳤다고 한다.

 한국은 AI 발생 이틀 뒤 농림식품부 장관이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고, 총리가 관계 장관회의를 연 것은 26일 뒤의 일이란다. 살처분과 이동통제, 소독시설 운영 등 역시 국내에서는 각 지자체가 산발적으로 이행하는 가운데 통제와 지역 간 연계가 부실했다고 한다. 그 사이 2천만 마리에 이르는 가금류는 죽어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세월호 때도 그랬고, 메르스 때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온갖 종류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난리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뒷북 행정이라도 좋으니 제발 변했으면 하는 게 국민들의 바람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눈물을 쏟아내면서 관람했던 영화 ‘판도라’ 속 한국 사회도 똑같았다.

 어쩌면 현실 보다 조금 나은 편인지도 모르겠다. 무능한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제정신을 찾아 차선책이라도 모색했으니 말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속에서 보여준 무능한 정부는 현재의 국정 난맥상과 어쩌면 그리 비슷한지 보는 내내 솟구치는 분노와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영화 속이건 현실이건 늘 생명을 담보해 가면서 최악의 사태를 막은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동안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아픔을 겪으면서 국가를 믿을 수 없었다는 학습효과로 스스로 나서서 절망 대신 희망을 찾았다. 절망하는 대신 촛불을 들고 추운 거리로 나섰고, 죽는 줄 알면서 다시 방사능이 오염된 원전 사고현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를 벌주기 위해 만든 ‘판도라’. 지상에 내려온 그녀가 호기심에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간에게 불행과 절망을 안겨줬지만, 놀란 나머지 급히 뚜껑을 닫은 탓에 하나가 빠져 나가지 못하고 남았는데, 바로 ‘희망’이란다.

 아무리 큰 재앙을 당해도 희망은 결코 버리지 않은 것은 그 때 잡은 희망의 힘 때문이라고 했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2016년 대한민국 사회, 만약 그 ‘판도라 상자’가 열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모르고 그냥 살았어야 했던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던 건가’를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더 무섭고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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