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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동 장어마을이야기’ 마치고
‘불암동 장어마을이야기’ 마치고
  • 김은아
  • 승인 2016.12.26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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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6개월의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났다. 김해문화재단의 ‘만만한 문화기획학교’를 이수하고 진행하게 된 프로젝트 사업 ‘불암동 장어마을 이야기’의 사진전과 출판기념회를 하루 앞두고 사진전 준비에 모두가 분주하다. 사진전은 예산이 부족해 폼보드가 액자를 대신했다. 그 덕분에 세월이 겹겹이 싸인 옛 사진의 운치가 멋있다.

 따끈따끈한 ‘불암동 장어마을이야기’ 책도 손에 쥐어졌다. ‘만만한 문화기획’ 과정을 마치고 진행한 인터뷰의 처음은 막막했다. 장어마을에서 가게를 하시는 분들이 처음에부터 호감을 가지고 인터뷰에 응하지는 않았다. 지역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 말에 의구심을 가졌다. 진심으로 마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하고 열심히 얼굴을 내미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기념회 당일,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바빠서 혹여 참석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전시회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흑백 사진을 보며 불암동에서 살아온 추억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불암동은 미륵불을 새긴 미륵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미륵바위는 부처방구라 해 높이 2m의 암벽에 1.8m의 마애석불이 조각돼 있었으나 지난 1972년 고속도로 공사 때 파손됐다. 파손된 미륵불은 현재 동상동 연화사에서 보존하고 있다.

 또한 선암다리(김해교) 자리에는 모은교(母恩橋)의 전설이 있다. 옛날 가락국 때 효성스러운 아들 삼형제가 강 건너 정부(情夫)를 찾아가는 과부(寡婦)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놓았는데 완성되기 전에 허물어지기가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이에 절에 가서 기도를 드렸더니 도사가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불암동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암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나루터가 있어 배를 타고 대사리나 구포로, 또는 부산으로 건너갔다. 고려 때는 낙동강을 따라 녹산으로 해서 바닷길로 개경으로 세곡을 실어 날랐고, 조선시대에는 낙동강을 따라 상주를 거쳐 문경까지 세곡을 실어 나르며 김해의 중요한 해상교통의 요충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낙동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터이기도 했다. 김해교(선암다리) 아래는 과거 ‘서낙동강의 황금어장’으로 불릴 정도로 어업이 호황을 이뤘다. 그물만 던졌다 하면 장어, 메기, 잉어, 가물치 등이 달려 나와 민물고기 가게와 장어가게들로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신항 배후도로 개설 공사로 인해 마을 일부가 철거되면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져 장어마을은 기존의 명성이 많이 퇴색됐고 예전부터 단골이었던 분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불암동 장어마을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사라진 마을이 사진과 책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 그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이 사라지고 추억도 함께 퇴색되더라도 잊혀진 추억을 꺼내고 그 속에 숨어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씩 손에 들고 가시는 주민분들의 가슴에는 추억도 한 묶음 엮어 들었을 것이다. 그 추억이 불암동을 함께 사는 삶의 공간, 누가 오더라도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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