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매일
뉴스 기획ㆍ특집 사람&사람 오피니언 교육소식 투데이+ 커뮤니티
인기검색어 : 김해시, 경남과기대
자세히
  •  
> 오피니언 > 매일시론
     
나의 골방
2016년 12월 28일 (수)
한중기 7618700@kndaily.com
   
▲ 한중기 두류인성교육연구소 소장
 지난 주말 지리산 서북 능선의 끝자락 바래봉으로 눈 산행을 다녀왔다. 요즘 마음고생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인 대학 동창과 함께한 송년 산행이었다. 긴 밤 모진 풍파가 빚어낸 기기묘묘한 형상의 상고대와 쉽게 만날 수 없는 멋진 운해의 장관을 벗 삼아 하얀 눈이 뒤덮인 산길을 걷는 행운을 기다렸다. 매우 춥고 궂을 것이라던 기상청 예보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맑고 포근한 날씨 덕분에 멀리 웅석봉, 천왕봉, 연하봉, 촛대봉,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릉을 한눈에 속속들이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의 송년 산행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바래봉은 사실 나만의 성스러운 장소 중 한 곳이다. 오래전부터 나의 으뜸 ‘성소(聖所)’는 지리산 천왕봉이고, 바래봉은 버금가는 성소다. 봄 여름 지천으로 뒤덮인 철쭉의 향연이 펼쳐질 때보다 은세계로 장식된 운봉고원을 마치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서북릉의 겨울 풍경이 연출될 무렵 바래봉 가는 길은 나의 성소가 된다. 언제부턴가 눈이 그립고 나만의 시간 속에 머물며 사색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바래봉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힘과 용기가 필요할 때면 칼바위, 개선문을 지나 천왕봉을 오르게 됐고, 삶의 지혜와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지면 몸이 먼저 운봉고원 바래봉을 찾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리산(智異山)’일까. 자연의 산이며, 사람의 산이기에 그런 것 같다.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곳, 지리산은 그래서 어머니 같은 산이라 했다. 모든 것을 보듬고 품어 내는 힘을 가진 산, 그러나 자연에 무례할 땐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는 산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이치와 똑같다. 세상을 사는 지혜와 용기, 포용, 사랑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에 나의 성스러운 장소로 손색이 없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마련이다. 풀뿌리 마라톤의 전도사로 불리는 전차수 교수는 ‘달리는 공간’이, 아인슈타인은 사우나 ‘탕 속’이 성소라 했다. 달리기에 몰입하다 보면 몸이 마치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면서 어느 순간 그림자가 지워진 내면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경험이나,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몸과 마음의 자유를 만끽하다 보면 오만과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 바로 사유의 지평을 무한대로 넓혀 갈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성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의 저자 정신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보따리 일상이 가벼워지는 곳, 하이힐과 정장을 벗어 던지고 반바지에 티셔츠 한 장이면 훌륭한 곳, 바로 싱크대 앞이 성소”라고 했다. 각자 삶의 현장이 자신의 성소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근로자는 일터가, 학생은 공부하는 공간이 성소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공간을 성소로 만들 수도 있고, 성소가 아닌 그저 그런 공간으로도 만들 수 있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공간은 저마다의 의미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소는 물리적인 공간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간의 개념이기도 하다. 함석헌 선생은 이를 ‘골방’으로 불렀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 (…)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 그대 맘의 네 문 밀밀히 닫고 /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 맑은 등잔 하나 밝혀만 놓면 /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혼돈의 시대 모두에게 나만의 골방을 만들 것을 제안해 본다. 아픔을 홀로 부여안고 끙끙대지 말고 골방, 나만의 성소로 지혜롭게 떠나보자. 세상의 아무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은밀한 공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 골방에서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골방은 문제를 피하는 곳이 아니고 고난의 피난처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그대로 바라보고 멈추는 곳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성급하게 상상하면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당연하듯 쫓아가는 자신을 그 곳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편견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자기를 점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며칠 남지 않은 병신년을 보내면서 꼭 가져봤으면 좋겠다.
한중기의 다른기사 보기  
ⓒ 경남매일(http://www.gnmaei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광고단가표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최종편집 2017.9.25 월 18:44
주소 : 김해시 외동 금관대로 1125 6층|우편번호 : 50959|대표전화 : 055)323-1000|팩스번호 : 055)323-3651
Copyright 2009 경남매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nmaeil.com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최용학
본 사이트에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소유하며, 발행인의 사전 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