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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깨우는 외침
희망 깨우는 외침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12.28 2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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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논설위원
 2017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이다. 60년에 한번 돌아오는 육십간지 중 34번째 해이며, ‘정(丁)’은 붉은색을 상징하고, ‘유(酉)’는 닭을 상징한다. 선견지명이 있고, 미래를 대처하는 능력과 예의 바르고 성실하다는 동물의 기운을 받게 될 해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12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문화 속에서는 ‘띠’라는 이름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십이지 중 열 번째인 닭은 음양오행으로 볼 때 완성과 결실의 의미를 지닌 동물이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판단하는 지혜를 가졌다 해 소위 ‘오시계(五時鷄)’라 불리는데, 시계처럼 정확하게 때에 맞춰 울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이러한 연유로 고려시대에는 닭을 궁중에서 시보(時報)용으로도 키웠다고 한다.

 유교문학에서 닭은 다섯 가지의 덕을 갖춘 동물로 묘사를 한다. 닭 벼슬은 관을 상징하는 ‘문’, 날카롭게 뻗친 발톱은 ‘무’, 적을 봐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성격은 ‘용’,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행동은 ‘인’, 때를 맞추는 습관은 ‘신’이라 했다. 이처럼 닭은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갖춘 길조로 옛 선현들이 그림을 통해 즐겨 표현해 왔다.

 경주 첨성대 서쪽 반월성 방향으로 길을 향하다 보면 계림 숲과 마주한다. 이 숲은 신라 김씨의 시조로 알려진 김알지의 탄생실화가 전해지는 숲이다. 삼국사기 탈해왕 9년의 기사를 보면 “금성 서쪽 시림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샐 무렵 호공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니, 나뭇가지에 금빛이 나는 작은 궤짝이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불교에서 닭은 깨달음 뿐 아니라 지혜와 총명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본생경>의 ‘수탉의 전생이야기’에서 닭은 탐욕스런 매를 훈계하는 보살로, 꾀 많은 고양이를 물리치는 보살로 나타나 불교에서 닭을 총명하고 지혜롭게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벽암록>에 나오는 ‘줄탁동기’ 역시 깨우침과 관련이 깊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나오려면 먼저 스스로 알을 깨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한다. 그러면 알을 품던 어미닭이 소리를 알아듣고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아 안팎에서 서로 쪼아댄다. 여기서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이고,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다.

 닭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예배당 종탑에 금속으로 만든 닭이 자리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십자가 위에 있기도 하고 십자가가 놓일 자리에 붉은 닭이 대신 서 있기도 한다. 거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닭의 울음은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회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유럽교회는 베드로를 각성시킨 ‘닭의 울음’을 통해 인류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교회는 닭과 같은 존재여야 하고 울지 않는 닭은 닭이 아니다. 우는 것을 잊어버린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세상의 불의에 항거하는 용기가 필요한 곳은 교회만이 아니다.

 닭은 주역의 팔괘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 신비로운 영물로 간주한다. 닭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양상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서 상징성을 내포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원일’에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닭은 액을 막는 수호초복의 기능이 있는 동물로 나타난다. 또한 삼원일 풍속에 새벽에 닭의 울음이 열 번이 넘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 귀신을 쫓는 벽사의 기능도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몇 마리씩 닭을 키웠다. 모이는 주로 옥수수였는데 ‘구구’하고 소리를 지르면 금방 닭들이 다 모였다. 가끔 옆집의 닭들도 식사 자리에 오는데 수탉은 수탉끼리 만나면 싸움이 벌어진다. 엎치락뒤치락 볏에 피를 흘리면서도 끈질기게 싸운다. 그야말로 닭싸움이다. 수탉은 이 싸움에서 지면 다시는 옆집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수탉은 먹이를 찾으면 혼자 먹지 않고 암탉과 병아리들을 불러들여 자기가 찾은 먹이를 양보하고 새 먹이를 찾으러 나선다.

 우리 사회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들은 마음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려는 국제정세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지 위에서 인간과 더불어 생활하는 닭의 삶의 방식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새벽어둠을 밝히는 우렁찬 첫 닭의 외침과 함께 희망찬 한 해가 시작된다. 예로부터 닭은 오덕(五德)을 지니고, 액을 물리치며, 개벽을 알리고, 완성과 결실을 의미한다.

 2017년, 희망과 환희로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 또한 커지고 있다.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 속에서 도래할 빛의 출현을 알린다. 만물과 영혼을 일깨운다. 새 아침과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정유년, 새로운 희망의 전환기를 맞이해 진리가 온 세상에 메아리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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