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2:51 (토)
금수저라도 쥐어주며
금수저라도 쥐어주며
  • 이주옥
  • 승인 2017.01.03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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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바야흐로 세상은 첨단을 넘어 멀티 사이언스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건만 대한민국은 난데없는 계급론으로 시끄러웠다. 세상이 어느 땐데 사람을 계급으로 차별하다니 이처럼 퇴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태생이야 어떻든 막연하게나마 뒤웅박 팔자를 꿈꾸는 것은 차라리 희망이었을까. 내 선택권이 없는 태생으로부터 시작되는 운명의 지속성에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부턴가 급부상한 수저론. 수저론은 대한민국에서 지난 2015년경부터 자주 사용되고 있는 사회 이론이다. 2030 청춘들이 부모님의 연소득과 가정환경 등 출신 배경을 ‘수저’로 빗대 표현하는 방식이다. 돈 많고 잘난 부모를 둔 아이들은 ‘금수저’고 그렇지 못한 평범한 아이들은 ‘흙수저’라는 것이다. 영어 표현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유래한 것이며, 유럽 귀족층에서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은수저로 젖을 먹이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엔 부당하게 성공하는 사회에 대한 일종의 풍자처럼 느껴져 그냥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재물이 많은 자와 힘 있는 자를 통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무 배경도 권력도 없는 소시민의 삶에 끼치는 파급은 적지 않았다.

 태생이 번지르르하고 물리적으로 가진 것이 많다는 이유로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신물 나게 들어오고 겪고 살았다. 기내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중소기업 대표 2세, 술집에서 소란을 피운 대기업 회장 아들 등 소위 금수저들의 잇단 일탈이 새삼 그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들이 이런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난폭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타인을 낮춰보며 상황적 우월감을 느끼려는 행동이라는 게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이때에 맞춰 요즘 돌잔치에 금수저 부조가 인기라고 한다. 틈새를 노린 마케팅이라 반짝인기겠지만 다시 한 번 작금의 수저론 현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엔 아이의 돌잔치에 반 돈짜리 혹은 한 돈짜리 금반지를 부조함으로써 아이의 부귀영화를 축원하고 건강을 기원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이전의 따뜻하고 정을 나누는 의미였다. 하지만 요즘 반지 대신 금수저가 대세라고 한다. 금수저 인기의 배경엔 ‘수저론’이라 불리는 계급론이 있다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될 것이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자식에게 금수저 물리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아이 손에 금수저를 쥐게 하니 순간이나마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저 웃어넘길 수 없는 씁쓸함을 어이할까.

 예부터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고 해서 특별한 선을 긋고 피에 금물, 은물이 섞인 것도 아닌데 성골, 진골 가르며 양반, 천민으로 나눴던 것도 인류평등사상에 부당한 일이었다. 아무리 영특하고 인물이 수려해도 천민으로 태어난 이상 일평생을 지난하고 비루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태생의 난점. 그러다 보니 한번 흙수저로 태어나면 은수저, 금수저로 올라가기 어렵고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좌절감과 패배의식만 팽배하게 만들었다. ‘흙수저’ 자체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한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수저계급론이 계속 거론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평범한 시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천민적 행태를 보이는 한국 상류층들 때문에 화를 내며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고 있다. 격(格) 없는 그들의 천민의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부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또 그만큼의 품격을 동시에 갖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모양이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사람들은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자리에 머물며 노력에 배신당한다면 너무 허탈하지 않은가. 수저론의 배후에는 성공이나, 행복, 출세, 배금주의 사상이 깔려있다. 이 시점에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이며 출세인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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