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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
인간의 이중성
  • 한중기
  • 승인 2017.01.10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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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기 두류인성교육연구소 소장
 모처럼 집에 온 딸과 뮤지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보면서 ‘과연 도덕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한참이나 맴돌았다. 어릴 적 라디오 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착한’ 우리 편과 ‘악한’ 나쁜 편의 대결 장면을 들으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분노하고 악의 철저한 응징을 기대했던 추억을 얘기하면서 아이의 어릴 적 추억을 살짝 건드려 봤다. 달라진 것은 라디오 대신 텔레비전과 컴퓨터뿐, 정서적으로 느꼈던 선악 구도는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선과 악은 인간인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양 극단이다. 내면에 공존하지만 경계선은 사실 불분명하다. 탈무드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노아가 방주에 만물을 한 쌍씩만 받아들이는데 ‘선’이 혼자 들어오기에 승선을 거부했더니 자신과 짝이 될 만한 것을 찾아다니다 ‘악’을 데려왔다고 한다. 노아는 그들을 받아들였고,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사 선과 악이 공존하지 않는 곳이 없다.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악의 문제, 그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다. 내면 깊숙한 어느 곳에 머물다 어느 순간 불쑥 내미는 악이라는 본능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과 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본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환경과 학습의 영향에 따라 선과 악의 작동이 결정지어진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자아와 본능을 주관하는 초자아의 영향으로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결정된다고 봤다. 주어진 환경에 따른 학습에 의해 본능 속의 악한 모습은 분포가 줄어드는 반면 선한 면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강화 받게 됨으로써 더욱 발현되고 표면화된다는 것이다. 인간 심리에 내재된 다양한 페르소나가 교육과 사회적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게 되는 셈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학설은 학교에서 익히 배웠던 세 가지가 있다. 본래 착하고 순수한 성품을 타고난다는 성선설, 본성이나 감성적 욕구가 원래 악함을 가정하는 성악설, 선과 악은 인간 고유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선택과 판단 또는 환경에 달려 있다고 보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 등이 있다. 결국 이들 학설도 선과 악의 대립적인 구도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속 이야기처럼 약을 먹으면 착한 사람이 됐다가 또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내면에 잠자고 있는 악의 가공할 만한 힘을 그린 소설 속 이야기를 살펴보자. 뮤지컬의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드러나는 악의 축을 보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인간은 양심과 욕망의 권력은 늘 분열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둘 다 그 근원이 깊어서 어느 쪽이 진정한 자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악은 숨어 있고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며 제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이드(Hyde)다. 고상하고 저명한 지킬 박사는 인간에게 선과 악의 두 가지 성질의 본능이 공존하는 것이 불행하다 생각하고 도덕심이 없는 흉악한 인간 하이드로 변신할 수 있는 약을 발명한다. 약물의 힘을 빌려 하이드가 돼 있는 동안은 도덕적 의식에서 벗어나 그는 완전한 해방감을 만끽한다. 선과 악의 공존에서 벗어나 반복되는 악으로의 지향은 어느 사이 약물은 이제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약 없이도 악의 모습을 가지게 되면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다. 인간의 이중성을 통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등장하는 ‘아프락사스’ 역시 선과 악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선은 ‘악이 없음이 아니라 선을 키운 것’이고, 악 또한 ‘선이 없음이 아니라 악을 드러낸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실 ‘벨 커브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의 양극단에 해당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사람은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내면의 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정농단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나 청문회장의 증언,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에게 과연 도덕이 있기나 할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거짓 없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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