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우리의 마음은 끝없이 추락한다. 박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뉴스는 넘치고 넘치다 보니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최순실 국정 농단은 말 그대로 나랏일을 제 배 채우려고 주무른 괘씸한 작태라는 게 이미 증명됐다. 그 배후에 당연히 최고 권력이 있다는 건 촛불을 들었던 초등생도 알고 있다. 행복한 국민은 몸이 어수선해도 마음은 평화롭다. 우리는 힘겨운 경제 사정으로 몸도 번잡하고 정치 상황 때문에 마음도 번잡하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삶을 보는 혜안은 별 볼 일 없는 일상사에 주목하면서 나온다. 살다 보면 뻔한 데서 의미의 한 줄기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번쩍 정신이 들 때,
“그래, 그렇구나.”
삶은 다시 물처럼 흐른다.
‘깨달음의 순간’은 번개 치듯 오지만 일상의 삶을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응시하지 않으면 이 순간을 맞을 수 없다. 오바마의 눈물은 뜨거웠다. 그가 남긴 말은 ‘희망과 화합’으로 모아진다. 그가 만든 해피엔딩 드라마는 많은 미국민들을 행복하게 했다. 한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이상한 나라 얘기’가 우리에게는 한없는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보면 사랑을 시작하는 여러 담론들이 나온다. 여기에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허점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인간 희망의 승리다”라는 생각할수록 괜찮은 한 문장을 건질 수 있다. 사람이 사랑을 갈구하는 데는 희망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행위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데서 무한한 희망을 피우는 것은 참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에게 희망을 바라는 것 또한 본능적인 행위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국민의 희망이 되지 않으면 심각한 상태다. 국민과 대통령은 남녀 간 사랑처럼 애증을 주고 받는다. 물론 애증은 오락가락하면서 파도를 탄다. ‘애’보다 ‘증’ 쪽으로 너무 기울면 평형수를 뺏던 세월호처럼 좌초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은 일상에서 바로 이 순간 ‘대통령이 행복을 주고 있나’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삶의 의미를 거창한 데서 찾지 않고 우리와 걸쳐있는 몇 가지 일에서 찾으면 마음이 답답하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삶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편안한 정치 상황이다. 지금은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상황은 꼬여도 너무 꼬여서 그 실타래를 따라가기도 힘겹다. 마음이 답답하면 행복으로 가는 길에 한두 차선이 막힌 꼴이다. 이러하면 국민의 삶이 질척거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꼭 행복을 주고 안 주고는 사람마다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 지금 오바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 대통령을 대비하는 건 무리일 수 있지만 좋은 대통령은 국민한테서 박수를 받고 떠난다는 게 하도 이상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가지는 복을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서 어느 날 문득 참 훌륭한 대통령이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의 행복도는 올라간다고 보장할 수 있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조그만 일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올 때 행복은 바로 옆에서 출렁이고 있다. “훌륭한 대통령이 그래 있지.”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물처럼 흐른다. 행복은 덤으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