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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유골
계란 유골
  • 이주옥
  • 승인 2017.01.17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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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조류 인플루엔자(AI)의 확산으로 방역당국과 축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서민들에게 가장 만만한 단백질 공급원에 차질이 생겼다. 닭의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당연히 계란공급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닭은 우리들에게 가장 친근하고도 의미 있는 동물이자 식재료다. 계절을 초월한 영양식인 삼계탕의 주재료고 기름에 튀겨져서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또한 계란은 인스턴트 음식이 주를 이루는 현대인들에게 그나마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 중 선호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계란은 특별한 요리법이 없어도 프라이나 쪄 먹는 것만으로도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기특한 녀석이다. 하지만 계란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여기저기 식생활은 물론 영업장에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음식 특성상 계란을 꼭 넣어야 하는 요리에 나빠진 계란 사정은 가계는 물론 경제에까지 파급력이 있다. 급기야 계란 한판에 만원이 넘고 그마저도 품귀현상이니 돈 주고도 못 사 먹는 형편이 됐다.

 일반가정에서야 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만 계란이 필수로 사용되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얼마나 애가 탈지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다른 메뉴로 대체하기도 그렇고 문을 닫을 수도 없으니 안타까움만 클 뿐이다.

 자주 먹는 콩나물국밥에 예외 없이 계란이 빠지기 시작했다. 갖은 나물과 고추장으로 비벼진 비빔밥에 계란 프라이가 빠진 모양새도 볼품없다. 우후죽순 널려있는 김밥집은 또 어떤가. 그나마 이런 음식들은 아쉽긴 해도 다른 부재료로 대신하며 사정이 좋아지기를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애타는 곳은 바로 빵집이 아닐까 싶다. 빵집의 수많은 메뉴에 계란이 빠진 것이 몇 가지나 될까?

 어린 시절엔 닭이 낳은 계란 한 알의 의미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식재료보다는 환금작용에 이용됐다. 소풍 때 도시락에 담긴 계란말이 한 조각은 밥 몇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갈 동안 야금야금 나눠 먹을 만큼 귀한 반찬이었다. 어쩌다 김밥을 말 때도 가능하면 가늘게 채 썰어 무늬만 내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음식의 메뉴가 다양해지면서 대형 양계장이 생겨났다. 수천 수백 마리의 닭들이 사료를 먹으며 열심히 알을 낳아준 덕택에 계란은 어느 집이나 만만하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됐다. 김밥엔 거의 밥의 두께만큼 두꺼운 계란이 들어갔고 찜질방에선 맥반석에 구워진 계란이 별미였다. 한정식집에 가면 뚝배기에 산봉우리만큼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 서비스로 나오는 건 예사였다. 거기에 피부미용에 훌륭한 재료로서도 여자들에게 사랑받았다. 새삼스레 고마운 계란의 역사와 쓰임새가 아닐 수 없다.

 마트엔 1인 1판 한정선을 그었고 주부들은 매번 조금씩 올라가는 가격표에 들었다 놨다 했다. 빵집에선 계란이 없어서 메뉴를 생산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아무 생각 없이 서너 개씩 깨뜨려 반찬을 하던 주부들은 계란을 만지작거리며 개수를 줄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시국도 어렵고 경제는 어려워 서민들 어깨가 펴질 날이 없는데 느닷없는 조류독감에 더욱 절망적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브루셀라까지 번져서 100여 마리의 소가 살 처분 됐다는 소식까지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이 노해서 먹거리에 제동을 거나 보다.

 정부에서는 무관세로 계란을 수입한다는 자구책을 냈다. 설 전까지 2천500만 개 가까운 미국산 계란이 수입된다고 한다. 명절을 앞두고 물량 조달은 물론 가격도 내리면 그나마 서민들의 부담과 걱정을 덜어 줄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물론 죽으라는 법은 없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는 하지만 음식에도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지면 본연의 맛과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느닷없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계란 품귀현상에도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하찮은 것이라도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고 곤란하다는 것. 있을 때 귀히 여기고 소중히 아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계란사태에서 배우고 느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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