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13 (금)
시가 노니는 상상의 역사(1)
시가 노니는 상상의 역사(1)
  • 하성자
  • 승인 2017.01.18 21: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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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자 시인ㆍ수필가ㆍ칼럼니스트
 역사는 지나온 흔적이다. 그중 핵심인 흔적을 문자화 된 서사로 기록하니 이것이 바로 역사서이다. 문자가 만들어지고서부터 역사서가 발현했고 그 역사의 기술로부터 문명의 한 자락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이 태동했으며 그 기록과 발전을 일궈온 역사는 사람의 서술에 의해서 가능했다. 한 시대를 설득하는 도구로써 문학이 기여해 온 바가 지대했던 특성을 상기해본다. 특히 시(詩, 노래)를 통한 유쾌한 상상으로 우리 역사와 함께 해 온 문학의 질펀한 흐름을 따라 오늘에 지향할 바를 재고(再考)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가야 문화권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에 있다. 가야 문화권 개발이 박차를 가하는 이 시점에 금관가야의 노동요, 수로왕 탄강 설화와 관련된 구지가로부터 물꼬를 열어 시가 노닐었던 상상의 역사를 피워보기로 한다.

 구지가(龜旨歌)

 거북아 거북아, 구하구하(龜何龜何)

 머리를 내어라. 수기현야(首其現也)

 내어놓지 않으면, 약불현야(若不現也)

 구워 먹으리. 번작이끽야(燔灼而喫也)

 구지가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무요(舞謠)이며 집단 노동요이다. 수로(首露)의 뜻은 ‘머리를 드러냄’이라고 한다. 탄강 신화에 의하면 구지봉(龜旨峰)에서 구간과 여러 사람들이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내려온 줄이 닿으매 궤짝이 있어 열어보니 여섯 개의 황금 알이 빛나고 있었다. 알이 모두 사람으로 변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사람으로 화한 이를 수로라고 했다.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6가야 연맹체 가야국(가락국)은 서기 42년 건국했다.

 금관가야는 철의 생산지였으며 뛰어난 제련 기술로 우수한 철기 생산이 가능했다. 동아시아 해상 무역권의 요충지였으니 허브 무역항이었을 것이다. 대가락국(大駕洛國)의 수로왕과 인도 아요디아국 공주 허황옥과의 결혼은 차(茶)와 복식, 불교, 정치체제 등 선진문물의 유입을 촉진시켰을 것이다. 김수로, 허수로 라는 동등한 호칭, 부부별산제(부부가 각자의 재산을 별도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형태), 한 아들은 김씨, 두 아들은 허씨 성으로 대를 잇도록 조처한 일은 민주국가인 요즘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양성 평등적 사고와 기능이 실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구지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금관가야 사람들의 신자유주의적 활동상이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매우 민주적이며 적극적인 주민 참여(참정)가 가능했던 국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금관가야의 탄강설화인 구지가의 내용과 그 노래를 불렀던 정황 때문이다. 구지가는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춤추며 부른 노동요이다. 명확하지 않은 설화인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짧은 기록에 상상력조차 불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첨부하며 수로왕이 전에 평민일 수도 있었다는 상상에 도달해 본다. 설사 수로왕이 황금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가정하더라도 정치인으로 수로(우두머리), 금관가야의 지도자로 등극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구간들이 수로왕에게 “먼저 머리를 내밀어 도전하라”라는 정치적 권유를 했다는 의미로 구지가를 해석해 보니 이는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지니는 게 아닌가!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정치 리더도 있겠지만 정치일선을 방관하는 훌륭한 은둔자들도 있다. 훌륭한 자질과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 나서주면 좋겠다. 세상을 관조하며 살기를 택했을지라도 부디 인물다운 이들이 나서주면 좋겠다. 구지가를 응용해 새로 지어 본 ‘新(신) 구지가’ 한 수를 던지며 긴급 구인(求人)해본다.

 훌륭하신 지도력을 가진 이여,

 부디 머리를 내어놓아라,

 내어놓지 않으면,

 당신보다 덜 훌륭한 이들에게 구워 먹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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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도 2017-02-21 06:20:57
세칭 구지가는 영대왕가이다. 그런데 난대 없이 노동요라하니 참으로 이상하다.
구지가는 구지봉에서 부른 노래라는 의미이고, 영대왕가는 대왕을 맞이하는 노래라는 의미로 그 제목의 연원이 가락국기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노동요라고 여길만한 사정이나 상황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성자씨의 시인 또는 수필가로서의 문학적인 입장에서라도 서사적 영대왕가를 노동요라고 정의하는 것은 부적절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