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0:23 (토)
1t 트럭 위의 희망
1t 트럭 위의 희망
  • 이주옥
  • 승인 2017.01.24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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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지난해 자동차 회사가 국내에서 팔린 브랜드별 판매량을 잠정 집계한 결과, 1t 트럭이 전체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트럭이 연간 판매량 1위에 오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란다. 지금까지 국내 베스트 셀링카는 승용차들의 독무대였다.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택배ㆍ운반 등 생계형으로 많이 쓰는 포터의 판매량은 불황의 ‘가늠자’로 간주한다”면서 “IMF 외환위기 직후 포터 판매량이 전년보다 30% 가까이 늘어났었다”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차는 곧 그 사람의 얼굴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는 누구보다 승용차 욕심이 많은 국민이 아닐까 싶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마인드로 자동차는 이제 사람들에게 삶의 필수품이 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차, 비싼 차가 곧 성공의 척도이며 삶의 또 다른 측정기준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듯하다. 실제로 어떤 차를 타느냐에 따라 관공서나 하다못해 식당에서조차 대접이 다르다고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1t 트럭의 판매량이 늘었다는 보도는 각박하고 바쁜 현실에 자동차는 비단 삶의 편리와 사치를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또 하나의 반증이다. 어쩌면 우리들 삶이 그만큼 절박하고 곤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에 도래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노동의 시간이 늘어나고 경제력이 지니는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날이 갈수록 사회구조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업무체계가 간소화되고 있다. 당연히 노동인력도 변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평생직장이란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철밥통에 대한 기대도 무너진 지 오래다.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이 아닌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들은 마흔 살이 넘으면 언제일지 모르는 퇴사의 불안함을 안고 살게 됐다. 다행히 정해진 년수를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이젠 노년이 아닌 장년이라 할 수 있는 예순 살 안팎이다. 모든 경제 활동을 접고 칩거하기엔 이른 나이다. 노후에 돌아갈 곳이 정해졌거나 농사라도 지을 땅이라도 마련해 놓은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퇴직금을 털거나 저축해 놓은 자금을 들여서 자영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대부분 쉬운 식당이나 작은 구멍가게를 창업하게 된다. 하지만 경험미숙이나 섣부른 판단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자본금만 날리는 일이 다반사다.

 1t 트럭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의외로 쉽게 이해가 된다. 이른 나이의 퇴사, 그리고 청년 실업자가 늘면서 소규모 자영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트럭은 가게를 빌리는 것보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게 들고,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소형트럭들을 찾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t 트럭 위엔 생계가 막막한 서민들의 팍팍한 현실과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의 단면이 얹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역 앞에 서 있는 푸드 트럭을 자주 보게 된다.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든 젊은이들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푸드 트럭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침 먹을 시간도 여의치 않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고마운 곳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생계의 원천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추운 줄도 모르고 연신 땀 흘리며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타는 젊은이의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애잔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1t짜리 트럭은 얼마나 든든하고 소중한 동반자일까. 그에게 1t 트럭은 돈뿐만 아니라 새로운 용기와 풍요한 미래를 위한 희망의 매개물일 것이다.

 시작은 비록 작은 트럭이지만 그곳이 기반이 되고 시작점이 돼서 언젠가는 번듯한 점포에서 장사할 날이 있지 않겠는가. 또한 그 1t 트럭을 시작으로 언젠가는 근사한 승용차를 몰며 아름답고 풍요로운 황혼 길을 달리는 꿈도 꿀 것이다. 혹한이 계속되고 있지만 1t 트럭 위의 분주한 움직임이 누군가의 꿈과 희망의 동반자이며 아울러 대한민국 경제 도약의 시발점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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