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13 (토)
역사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
역사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
  • 김혜란
  • 승인 2017.01.25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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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쏟아지는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속보와 뉴스들에 급기야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한발 앞서서 보도하려거나 새로운 소식을 습관처럼 퍼트리는 SNS 사용자들이 딱 속기 좋은 아이템이다. 심지어 보통사람들이 듣기는 꺼려하지만, 퍼트리기 좋아하는 ‘은밀한 사생활’ 이야기가 국정농단 관련 증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국정농단 관련을 주제로 예술인지 외설인지 갑론을박하기 딱 좋은 풍자패러디 작품을 국회에서 전시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런 일들은 이른바 ‘물타기’랄지 자칫 진실을 놓치고 본질이 아닌 것에 국민들의 생각을 쏠리게 만든다. 먼 훗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혹시 진짜 역사인 듯 기록으로 남길지도 모르고 후손들은 학문으로 연구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왜? 그 당시에 많은 국민들에게 회자된 일이어서 진실에 가깝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알려지고 정석이라고 기록된 역사에도 누군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분탕질 되고 왜곡된 흔적들이 자주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화재 중에 대한민국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다. 그런데 사적 1호는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한민국 사적 1호는 바로 포석정이다. 그런데 사적 1호가 포석정이 된 데에 ‘삼국유사’가 악용됐다는 사실은 더 아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문화재를 조사한 후 보물을 지정해서 공표했다. 보물 1호는 남대문, 보물 2호는 동대문, 고적 1호는 포석정이었다. 국보가 왜 없었냐하면 당시 식민지에 무슨 국보가 있느냐는 논리를 갖다 댔다고 전한다. 포석정이 사적이 아니라 ‘고적’인 것은 그저 ‘오래된 흔적들’이라고 치부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한 뒤에 대부분의 읍성을 무너뜨렸는데, 한양의 도성도 다 무너지고 겨우 남대문과 동대문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유는 더 기가 찬다. 그 두 문으로 일본의 적장 가토와 고니시가 출입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면 포석정은 왜 국보도 아니고 보물도 아니고 사적 1호였을까. 학교 다닐 때 포석정은 왕과 귀족들이 술 마시고 놀던 장소로 배웠다. 신라 경애왕이 견훤이 쳐들어 왔을 때 포석정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놀다가 경주 함락 후 견훤의 강요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으로 들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뭔가 모를 자괴감과 열등감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일제는 ‘삼국유사’에 그렇게 적혀 있다면서 나라가 함락되기 직전에도 술과 잔치에 빠져 있는 임금이 무슨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있냐고, 이른바 식민사관을 ‘삼국유사’ 속 포석정 이야기에 입혀 버렸다. 우리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잘못 알려진 옛 선조들의 행적을 들을 때마다 비애감에 젖었다.

 포석정 이야기는 사실과는 다르다고 알려졌다. 견훤이 신라를 침공한 것은 음력 9월이었고, 신라는 급히 고려에 원군을 요청했지만 원병이 오기 전 11월에 경주가 함락됐다. 삼국유사에는 11월, 양력으로는 12월인 것이다. 그 추운 엄동설한에 누가 한데 나가서 술과 잔치를 즐길 것인가. 게다가 아무리 한심한 임금이라도 남의 나라에 원병을 요청해 놓은 위급한 상황에서 술과 잔치라니, 순전히 일제의 억지주장이었다.

 경애왕이 포석정에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포석사라는 사당이 있었는데, 화랑의 모범으로 이름을 떨쳤던 ‘문노’라는 화랑을 모신 그곳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갔던 것이다. 문노를 본받아서 신라를 지키자는 일종의 ‘정치적’ 이벤트였던 셈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분탕질한 일제와 반성이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답습해서 국민들에게 알게 한 역사계 사람들 탓이다. 그리고 아무 의문도 없이 그저 받아들인 우리의 전적인 책임도 크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것도 걱정스러운데 소리가 크고 선정적이어서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 기록을 혹시 역사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걱정이 한낱 기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고 ‘정치적’이어야 할 것 같다.

 지금껏 지배계층이나 지도자들이 풍부한 학식과 정치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만 알고 있었지만 현실 속 국정농단 사태를 볼 때 완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정치란 우리 일상생활과 사고방식을 결정짓는 기본적인 요소다.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질서, 진실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올바른 정치적 능력을 기르고 수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벌이는 일조차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낱 개인의 은밀한 이야기나 다른 무엇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를 알아채는 예리한 시선과 시각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기회는 지금이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인’으로 거듭날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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