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43 (금)
폭설 내리던 밤
폭설 내리던 밤
  • 이경미
  • 승인 2017.02.13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경미
설 대목이라고 67번 버스종점 고바위 국민주택 골목에 꼬신내가 등천을 하는데 형광등 빛 멀건 두 아이 눈망울 속엔 새하얀 근심이 차곡차곡 십몇 년 만이라는 폭설에 버스는 끊긴 지 오래, 어미의 기척 놓칠까 곧추세운 제 귀를 못 믿어 쪽문을 열면 아찔하게 달려드는 눈발, 눈발보다 더 빨리 파고드는 부침개 냄새에 몸을 말았네

양손에 든 참기름병, 말통 식용유를 이다가 들다가 이 집에서 저 집, 저 동네에서 이 동네로 눈 고개 까마득한 어미가 윙윙대는 눈발보다 빠른 걸음이 닿은 곳 천근만근 얼어 터진 불덩이를 어쩌지 못해 두 다리 뻗고 가슴을 쳤네 난 바람에 눈이 먼 아비 대신 자식들 제 앞가림할 만치는 가르쳐야제, 마음 봉우리에 대못 꽝꽝 박았는데 바삭바삭 타는 하루 떼기 세월 먹피 울음 꺽꺽 냉골방에 찐득하네 멍울멍울 돋는 설움 삼키느라 몸을 만 두 마리 청설모가 왕방울만 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그 밤

어린 두 딸은 눈에 고인 죄의 풍경을, 어미의 뜨거운 울음을 둥글게 둥글게 말아 높이, 가장 아득한 별자리 이름으로 걸었네 눈 덮인 세상엔 그림자도 없었네

시인 약력

시인, 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