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6:42 (금)
돼지꿈 꿔볼까
돼지꿈 꿔볼까
  • 이주옥
  • 승인 2017.02.14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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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새해가 되면 소원을 말하고 빌어본다. 대부분은 가족의 건강이나 취업, 결혼 등 소박한 꿈이다. 그것은 아마 지금껏 살아오면서 거창한 것보다는 작은 소망이 이뤄지기 쉬웠던 인생행로에서 나온 지혜이리라.

 근래엔 유난히 로또나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당첨자가 많이 나온 명당판매소 앞에는 로또를 사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릴 정도라고 한다. 숫자 여섯 개에 많게는 수백억이 한 번에 수중에 들어온다는 상상만 해도 전율이 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것이 되는 것이 많지 않은 세상살이. 이렇게 로또에 목숨 걸듯 줄을 서는 이유는 타개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당첨되기 어려운 것에 의존해서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는 것일 거다. 실현 불가능한 대박을 기원하며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으려는 서민들의 팍팍한 삶의 반증인 것 같다. 로또가 당첨되면 인생 역전, 안되면 인생 여전이라는 탄식이 더욱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다.

 세상엔 공짜란 없다고 한다. 쉽게 거저 얻는 것엔 반드시 치러야 할 값이 있는 것은 웬만히 살아본 사람들은 익히 체험한 일이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부터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는 말까지 공짜에 대한 비유는 참으로 많다. 하지만 노동이 배제돼서 얻는 것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니어서 허무하기 이를 데 없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 남편은 끝자리 숫자 두어 개가 맞아서 이만 원의 당첨금을 받았다. 내게 툭 던지며 돈으로 바꿔 딸기 사 먹으라 했다. 난 주저 없이 딸기를 사서 즐겁게 가족들과 저녁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내심 이만 원으로 5천원짜리 넉 장을 사서 더 큰 액수의 당첨금을 꿈꿨던 모양이다. 곧이곧대로 딸기를 사 먹음으로써 미련 없이 손 턴 나를 어이없이 바라보며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와 남편이 공유한 대박 꿈은 이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 후 남편이 나 모르게 로또 당첨의 꿈을 꾸며 복권을 계속 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난 내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딱히 욕심내지 않는다, 허황된 꿈은 꾸지도 않고 내게 가당치 않은 것은 애초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물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내 노동에 의한 것이 아니면 거저 얻어서도 안 되고 거저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인생에 반전은 없었다. 그러니 내발로 찾아가 복권이나 로또를 사본 적도 없다.

 갈수록 돈이 힘인 세상이다. 지금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돈에 의해 돈으로 인해 시작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라 결국 그 욕심은 화를 부르고 그에 상응한 죗값을 치르게 하고 비난을 받게 한다. 화무십일홍은 비단 꽃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듯하다. 어제의 꽃길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오늘의 가시밭길이 되기도 하는 게 인간만사 새옹지마의 실체이며 대박과 쪽박의 간극이리라.

 대부분 사람들은 꿈이 현실을 예지한다고 믿는다. 특히나 어른들의 꿈에 대한 신봉은 절대적일 때가 많다. 그것은 아마도 매사 신중하라는 뜻일 테고 또한 삶은 그렇게 반전이 있는 재미의 연속이 아니라는 뜻도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본적도 없는 조상과 일면식도 없는 유명인사가 꿈에 나와 나의 미래를 예지해주고 어려움을 단숨에 타파해 준다는 것은 참 허무맹랑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지도 못한다. 간혹 돼지 여남은 마리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 백발의 조상님이 예지해 준 숫자 꿈을 내 남은 생을 한순간에 부귀영화로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로또 한 장과 맞바꾸며 대박을 기대한다. 그것은 어쩌면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인 채로 지난하게 사는 삶에 희박하지만 꿈과 실현 불가능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이며 버티고 견디는 희망 같은 것인지도 모르니까.

 오늘 밤 목욕재계하고 정기를 모아서 꿈에 돼지 몇 마리 불러 모아 내일 로또 몇 장 사볼까 하다가 씁쓰레 웃는다. 인생의 대박과 반전이 어디 그리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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