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53 (토)
여행을 하면 보이는 것
여행을 하면 보이는 것
  • 김금옥
  • 승인 2017.02.15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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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와! 일제히 탄성이 버스 안을 울려 퍼졌다. 지중해의 가장 아름다운 5%를 차지한다는 바다, 깊고 푸른 아드리아 해의 수면 위로 겨울 햇살이 내려앉고, 해안선을 따라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다정하게 머리를 맞댄 주황색 지붕들이 그림처럼 펼쳐졌을 때였다. 버스는 크로아티아의 최남단 드브로브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크로아티아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여행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었다. “꽃보다 누나요!” 순간, 필자에게도 여행 전문 채널에 나왔던 김희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맞아요. 그렇다면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답은 2002월드컵이었다. 그전에 그들은 ‘삼성’이나 ‘LG’는 알아도 그것이 대한민국 제품임은 알지 못했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그런데 그 국제적인 행사는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대한민국을 경이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중 첫 번째 이유는 일본과 대한민국이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로 일본을 손에 꼽았고, 대한민국을 여행하기 가장 위험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았다고 한다. 그런 이질적인 두 나라가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한다니 가당키나 하겠는가 하는 인식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서울이 인구 천만의 도시라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 보니 크로아티아는 대한민국의 57% 정도 면적에 전체 인구가 450만이 안 되는 나라이니 한 도시의 인구가 천만이라는 것에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세 번째는 붉은 악마의 모습이란다. 지난 1998년 프랑스에서 월드컵이 끝나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다음 개최국인 우리를 향해 가장 염려했던 것 중 하나가 훌리건에 대한 대처 문제였다고 한다. 필자도 훌리건들의 난동에 의해 축구장이 붕괴돼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골을 넣은 선수가 세레모니를 하다가 상대 응원단에서 던진 병에 부상을 당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매스컴에서 종종 접하곤 했다. 우려와 달리, 대한민국 도시의 광장이나 경기장에서는 ‘붉은 악마’들이 거대한 태극기를 펼쳐지면서 질서정연하면서도 용광로 같은 열기를 뿜어내는 응원전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경기가 끝나자 응원전은 청소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들의 경이로움은 우리를 열광케 했던 태극전사들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나 4강 신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은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나 문화 체험 외에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저것이 크로아티아의 염전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입니다. 산을 가로질러 방어 탑을 세웠지요. 중세는 향신료 전쟁이었습니다. 드브로브닉은 소금이 주요 수출품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소중한 소금은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음식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해서 소금 1㎏은 금 1㎏ 무게로 달아주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남편들은 음식을 싱겁게 해 주면 아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발칸을 여행하는 내내 음식이 짜다는 불평이 끊이질 않던 우리 일행을 향해 던진 조크였다.

 가이드는 드브로브닉 성벽 위에 우리를 올려놓고 오랜만에 자유 시간을 선사했다. 구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성벽 위를 걷다 보니 오른쪽으로 바다가 얼굴을 드러냈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시는 아름답고, 외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돼 증축과 보완을 거듭한 성벽은 두껍고 견고했다.

 이제 우리는 외침을 막기 위해 성을 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붉은 악마’처럼 그렇게 단단하게 뭉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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