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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里眼(천리안)
千里眼(천리안)
  • 송종복
  • 승인 2017.03.01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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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千:천-일천 里:리-마을 眼:안-눈

 천리안은 천 리 밖 일까지도 볼 수 있는 눈을 말하고, 순풍이는 천 리 밖 일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귀를 말한다. 어떤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주로 쓰는 용어다.

 천리안(千里眼)이란 ‘천 리 밖을 보는 눈’이란 뜻으로, 먼 곳의 것을 볼 수 있는 안력이나 사물을 꿰뚫어 보는 힘이며, 또 먼 데서 일어난 일을 직감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천리안이라 한다. 중국 <위서(魏書)>의 양파전(楊播傳)을 보면 북위(北魏) 말엽에 양일(楊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광주자사(廣州刺史)가 됐다.

 그는 항시 자신을 낮추고 백성들을 존경했으며, 민생고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밤늦게 근무하며, 병사들이 훈련하러 갈 때는 친히 전송했다. 바람이나 비와 눈이 오는 날에도 조금이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법은 엄격히 시행됐으나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서로 조화를 이뤄 관내가 모두 양일 자사를 공경하고 두려워해 감히 죄를 짓지 못했다.

 한번은 흉작이 들어 심한 기근이 오자 아사자가 속출했다. 양일(楊逸)은 곡물창고를 열어 사람들에게 배급하려 했다. 그러나 관원들은 멋대로 창고를 열면 문책당할 것이라 반대했다. 그러자 양일은 단호히 잘라 말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며, 사람은 먹는 것을 명으로 삼는다. 백성들이 만족하지 못하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만족할 수 있겠느냐? 만약 이것으로 죄를 얻게 된다면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며 창고를 열어 식량을 방출하고 또한 노약자에게 밥을 지어 주어 수만 명을 구조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황제는 그 조치를 칭찬했다.

 양일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간교한 것을 미워하며 널리 자기의 이목(耳目:첩보원)을 심었다. 또 병사나 관리들이 소속고을에 출장 갈 때는 식량을 지니고 갔으며, 백성들이 대접하면 은밀한 곳이라도 가지 않았다. 모두가 “양 자사가 천 리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데(咸言楊使君 有千里眼),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느냐고 한데서 천리안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순풍이(順風耳)는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천 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말한다. 우리도 이같이 천리안과 순풍이를 정치교훈에 삼았다면, 오늘같이 탄핵은 없었을 것이고, 이쪽은 촛불, 저쪽은 국기로 서로 대치하는 현실도 없을 것이다. 위정자여 우리도 천리안과 순풍이를 교육받아 항시 곁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 백성들은 존경할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 법률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역사 공부 좀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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