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21:30 (화)
유종의 미
유종의 미
  • 이주옥
  • 승인 2017.03.14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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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가야 할 곳을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낙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구절이다. 언제부턴가 왠지 모르게 늘 마무리를 잘하자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좋은 일이라 믿고 진행했던 일들에 끝이 좋지 않았다는 몇 번의 자각이 그런 강박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때론 과정 중에 드는 격한 감정이나 어긋난 심사를,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묻어두고 삭히기도 했다. 간혹은 감정에 충실하지 못해 내 자신에게 미안할 때도 있었지만 결과는 그랬기에 다행인 적이 많았다. 과정보다 결론이 중요시되는 세상. 열 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함으로 그간의 쌓은 공이 무너지는 허망함은 다들 몇 번씩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장장 200여 일 동안 대통령이 연루된 전대미문의 사태로 대한민국은 시끄러웠다. 올바른 정권을 외치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은 집회라는 단체 행동으로 표현됐다. 그 사이 정국은 뒤숭숭하고 국민 정서붕괴는 물론, 서민들은 생계에 위협까지 느꼈다. 그랬던 지난 10일, 결국 대다수의 국민이 염원하는 결론을 맞이했다.

 국민 대부분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살아있는 정의에 안도했던 순간이었다. 어떤 일에나 찬반양론은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불상사는 표출된다.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이라는 대참사. 인명의 희생도 있었고 극단적인 언사로 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감정의 화살을 날리며 극도의 분열현상을 빚었다.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굴레는 개인에게도 치욕이겠지만 한 나라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새로 쓰이는 법. 이 일을 기회로 국민의식이 쇄신되고 혁신적인 정치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탄핵 결과에 정작 당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면목 없어서 할 말이 없었는지 아니면 승복할 수 없다는 무언의 시위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정치권이나 국민이나 추측만 분분하다. 측근들은 다소 억지스러운 의견을 피력하고 그 과정에 몇몇 인명 피해도 있었다. 가슴 아프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탄핵이 결정되던 날 그녀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거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소 며칠을 더 머무른다는 얘기가 보도됐다. 오랜 세월 기거한 곳을 하루아침에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애틋함인지 아니면 자리에 대한 연연인지 모를 일이다. 어느 누구는 점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국민이 온몸을 부려 투쟁하고 염원했던 결과에 공감이나 동의하지 않는단 것처럼 보인다. 그것 또한 끝까지 국민을 배려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아 안타깝다. 고개 숙여 그간의 잘못을 사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의사 존중의 의미로 한마디 인사말은 남겨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태평성대를 꾸려온 성군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다만 얼마만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했느냐와 드러난 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살면서 크건 작건 실수도 하고 실례도 범하고 사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잘못도 본인의 반성이나 참회가 있으면 용서도 받고 이해도 받는다. 탄핵 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말은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만이 그동안 자신으로 인해 마음 아팠던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기도 하고 또한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안전한 행위였을 것이다.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다변했다 해도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마무리를 멋지게 하는 일은 과정의 불미스러움이나 미비함을 다소 희석시킨다. 또한 남은 생을 역주행하는 일인지 모른다. 자연인으로서 사저로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 환호에 눈물을 묻힌 채 한껏 웃는 모습. 단순한 포커페이스였을까, 아니면 심중 깊은 곳에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었을까. 어쨌거나 가야 할 곳과 갈 때를 아는 사람, 그리하여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가 한 번쯤 마음속에 품고 지향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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