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53 (금)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요
  • 이영조
  • 승인 2017.03.19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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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어느 날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사람’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저는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했을 때 거절을 당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까봐 항상 두려움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직장생활에서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너무 힘이 듭니다.”

 이렇게 호소하는 그를 보며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런 두려움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 사회생활을 하는데 무기력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들에 한정된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혼자 지내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이 상대방으로부터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를 제한하려는 현상을 보일 때 회피성 인격장애로 분류한다.

 회피성 인격장애는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과 여성의 경우에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어린 시절에 경험한 모욕감이나 수치심 또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성장한 환경적인 영향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작용돼 나타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고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그는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도 남들에게 결코 떨어지지 않는 호남형이었다. 자신감 넘쳐 보이고 이렇게 건장하게 생긴 사람이 왜 이럴까? 남다른 내적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런 경향을 보이게 된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유년기부터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부모의 관심과 친밀도,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등 기억을 상기시켜보니 의외로 아픈 기억들이 많이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친밀도는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외부에 자신을 들어내는데 소극적이다. 이는 자기가 결정하고 시작한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서 상대방이 자기를 무시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에 늘 마음을 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기를 멀리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자기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고 사회참여나 대인관계를 회피하고 대중에게서 벗어나 은둔 생활을 하려고 한다.

 회피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 불안 장애, 타인에 대한 분노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대인관계가 요구되는 비즈니스 관련한 직업에는 종사하기 어려워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그에게 자존감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 회피성 인격장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대화를 하면서 느낀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해줬다. 첫째로 그는 외모가 수려했다.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영화배우와 비교하면서 뛰어난 외모를 칭찬했더니 절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조금 더 구체화시켜 이야기를 해줘도 극구 부인하면서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억지로 강요해서 빚을 수 있는 마찰을 피하고 두 번째 장점을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묵직하고 상대방에게 신뢰와 호감을 주는 멋진 성대를 가졌다. 같은 남자로서 부러웠다. 그러나 그는 그것조차도 부인했다. 자신은 자기의 목소리가 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답답하고 느리고 너무 무거운 느낌이라서 상대방이 자기를 답답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외면을 한다고 말했다.

 그와의 마찰을 피해 가면서 계속 장점을 하나씩 이어갔다. 어떻게 보면 수다이고 잡담을 나누는 것 같은 시간을 30분 넘게 보내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던가?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거부하고 부정했던 그가 선생님 지금까지 하신 말씀이 사실인가요? 그냥 저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 아닌가요? 계속 이어지는 자신의 장점을 듣다가, 사실인가? 정말 내 장점이 이렇게 많은가? 그의 마음은 반신반의로 바뀌었고 눈빛은 흔들렸다. 그리고 나의 말에 조금씩 동의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자신을 거부하던 방호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순수하고 진실하기는 해요. 제가 일을 할 때는 진심을 담아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윗분들에게 칭찬을 들은 적도 있었어요. 그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의 장점을 말하고 있었다. 속으로 ‘이제 됐어!’, 드디어 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오늘 이 순간을 시작으로 서서히 자존감이 회복될 것이다.

 회피성 인격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하거나 그로 인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자신만의 세계에서 혼자 지내려고 하지만 그들의 또 다른 내면에는 오히려 타인들과 친밀해지기를 원하고 그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한 걸음 더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관심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위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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