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5:14 (금)
중년 세레나데
중년 세레나데
  • 이주옥
  • 승인 2017.03.21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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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적당히 살진 얼굴에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머리칼, 약간 느리고 낮은 바리톤 음성, 파이프 담배와 서재는 내 머릿속에 그리는 중년 남성의 키워드다. 정갈한 올림머리, 적당히 살찐 허리, 미디길이의 치마 정장, 조용한 음성에 온화한 미소는 중년 여성의 실루엣이다.

 중년. 사전적인 풀이는 ‘인간의 인생에서 장년에서 노년 사이의 단계’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나이는 대략 50세에서 65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온유함과 배려, 관조, 이해라는 단어와도 부합되는 이미지다. 하지만 요즘의 중년, 특히 50살 넘은 여자를 두고 미모는 평준화되고 성 정체성을 잃어가며 약간은 몰염치한 제3의 성으로 비하한다. 소위 말하는 ‘아줌마’의 절정을 보여주는 부류다. 3~40년 가까이 산 남편의 존재를 귀찮아하고 대부분 시댁에서 대접 못 받은 설움을 안고 있고 자식을 위해 헌신한 스스로를, 한 가정의 희생양으로 자인하고 있다. 뒤늦게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불안정의 나이로 간주하기도 한다.

 식당이나 커피숍엔 중년 여인들 천지다. 점심때면 어딜 가나 고만고만한 연배의 여성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간의 가부장적 전통에서 겪은 설움을 설욕이라도 하는 듯 이젠 바깥에서 그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생활 30년 넘은 남편의 지위는 그녀들에게 경제적인 여유를 주고 그동안 축적된 재산과 입지는 그녀들의 자유에 든든한 뒷받침이 돼주고 있다. 세상은 그간의 억압과 불평등에 보상이라도 해 주듯 갈수록 여성들을 위한 배려가 늘어나고 있기에 중년의 여성들은 세상 속에서 날아다닌다.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는 염려가 있은 지 오래다. 하지만 대형 서점의 집계로는 그래도 50~60대의 중년남성들 책 구매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닌, 주로 심리나 인문에 관한 것이란다. 중년남성들의 일탈은 그동안 방치된 자기 안의 ‘나’를 찾아 자꾸 안으로 들어오는 형태인 것 같아 여성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당하는 사회적인 소외와 가족에게 배척당하는 위치에서 택한 자구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씁쓸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내가 그려 놓은 파이프 담배와 서재 속의 중년남성에 부합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흐뭇하고 행복하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돌입했다. 중년의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 긴 시간을 무엇인가로 알차게 채워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다. 그저 먹고 자는 것으로 남은 생의 한 자락을 소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이 다변화할수록 인간의 지적 욕구는 더욱 강해지며 알 권리도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남성이나 여성 모두 이제부터 진정한 자아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녀 상호 간의 화합은 더욱 필요하고 그러기엔 자기 성찰을 통한 격조와 품위는 필수 요소다. 언제나 깨어있는 마음과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거기에 발맞추려는 열린 마인드도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삶의 질은 본인의 취사선택에 따라 그 격이나 질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마련 아니던가.

 중년의 나이는 누구의 간섭이나 교육 없이 본인의 판단과 선택이 100%라고 과언이 아니다. 또한 철저하게 그 책임까지 져야 한다. 100세 시대에 중년의 나이 50~60세는 절반의 삶 밖에는 살지 않았다는 증거다. 살아온 만큼 남은 생을 또 살아내야 한다. 젊은 자식세대로부터 물러나 적당한 잉여인력으로 남을 수는 없는 것. 경제 전선에서도 아직은 꿋꿋해야 하고 건강 또한 필수다.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멋졌고 어미로서의 헌신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중년들. 남은 시간, 단순한 허무와 억울한 감정보다는 이젠 의무의 강박과 억압에서 벗어나 나 자신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스스로에게 보상해야 할 시간이다.

 원숙하게 익은 나이 중년, 온화한 마음과 서늘한 이성과 청명한 눈빛과 초원 같이 넓은 가슴으로 나를 향한 멋지고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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