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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이혼
황혼 이혼
  • 경남매일
  • 승인 2017.03.2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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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옮겨 적어본다. 여자는 혼자 살면 ‘만고강산’, 남자는 혼자 살면 ‘적막강산’, 마음도 맞고 밤도 좋은 남편 만나 살면 ‘금수강산’, 마음 안 맞는 남편이랑 살면 ‘칠흑강산’, 마음은 안 맞아도 밤에 좋은 남편이랑 살면 ‘행복강산’, 남편도 멋지고 애인까지 있으면 ‘화려강산’이란다. 이 유머만을 놓고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자에겐 천국이고 남자에겐 지옥처럼 느껴진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유행하는 배경에는 이조 시대부터 남존여비 사상으로 철저하게 멸시당한 한국 여성의 한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든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유리천장에 갇힌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특정직군(교직, 공직 등)에서는 여성의 진출이 괄목할 만하지만 여전히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쪽은 여성이기에 유리천장의 벽을 뚫기엔 중과부적이다.

 근래 30여 년을 산 부부들 사이에서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한해 31만 명이 결혼하고 11만 명이 이혼하는 가운데, 결혼 20년 이상을 유지한 부부의 이혼(황혼 이혼) 건수가 3만 3천건에 이른다. 이혼자의 30%가 황혼 이혼을 하는 셈이다. 이런 통계수치는 앞서 유머에서 보듯이 여성의 결혼만족도가 기대 이하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늘그막에라도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짐에 따라 수십 년을 남편 뒷바라지만 해온 삶을 더 이상 계속하기 싫다는 것이다. 남성보다 기대 수명이 긴 여성으로서 노후준비가 제대로 안 된 노후의 삶은 불안하고 고달프기만 하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자식들의 부모 부양을 기대할 수가 없고 또 애써 바라지도 않는다. 은퇴 이후의 황혼 이혼 증가는 사회보장 제도가 완벽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서 또 하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가 있다. 자살률 세계 1위인 한국에서 노인자살률이 최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황혼 이혼의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최근 황혼 이혼의 극복방안으로 졸혼(卒婚)이 늘어나고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TV 드라마에서 이미 졸혼 이후의 가상결혼생활을 보여 줬고, 모 중견 연기인이 졸혼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졸혼’이라는 말은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꼬가 지난 2004년 펴낸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졸혼이란 부부가 서로 이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생활방식으로 일본에서 황혼 이혼이 급증해 사회문제화되면서 나온 대안이라고 한다. 법적인 혼인상태를 유지하되 오랜 세월 유지해온 부부 생활의 졸업을 뜻하는 것이다. 별거와 비슷하지만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감정적인 유대감이 남아 있어 서로 교류하는 삶을 유지한다는 점이 이혼과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졸혼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여자 63%, 남자 54%가 노후에 졸혼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무늬만 부부인 쇼윈도 부부로 보이거나, 비교적 자유로운 외도를 부르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긴 해도 함께 살면서 각방을 쓰는 형식적인 부부 생활보다 나을 것도 같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사후 이혼’이라는 새로운 이혼 형태가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사후 이혼’은 배우자가 사망한 후 그쪽 가족, 친척과의 법적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여성들이 시댁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이유가 대부분이지만 생전 아내를 애먹인 남편에 대한 응어리가 ‘사후 이혼’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사례는 없지만, 올해 말에 고령사회(노인인구 14%), 오는 2026년에 초 고령사회(20%)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사망한 배우자 가족들과의 갈등이나 그 부모를 간병하는 문제 때문에 사후이혼을 신청하는 여성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사회를 맞아 황혼 이혼, 졸혼, 사후 이혼 등 다양한 형태의 부부관계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트렌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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