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36 (금)
생각하는 교육
생각하는 교육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7.03.26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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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내가 아는 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은 과학을 가르친다. 근 30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수업을 매끄럽게 진행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애매하거나 모르는 것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인도 정답을 알기 힘든 과학 시험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단다. 주변 많은 선생님이 그렇단다. 전공과목이라고 다 알 수는 없다는 점을 십분 인정해도 학교 시험문제가 이래도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함정투성이인 수능시험을 질타한 바 있다. 비틀고 꼬아서 오답을 유도하는 식의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17학년도 수능 국어 시험을 풀었더니 80분 동안 45문항 중 32문항을 풀어 21문항을 맞혔다고 한다. 6등급 정도의 실력이다. 대학 총장의 국어 실력이 이 정도일 것은 아니다. 김 총장은 수능에 격한 분노감을 표출했다. 고3 학생과 평생 학문을 한 대학 총장의 국어 실력은 분명 총장이 뛰어날 것이다. 그런데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나온다. 이런 실력과 점수의 괴리는 정답을 달달 외웠느냐 아니냐의 차이라 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 이혜정 교수는 교과서에 실린 자신이 쓴 글이 시험문제로 나왔는데 답을 틀린 한 학생이 자신에게 정답을 물어왔다고 한다. 문제는 ‘작자의 의도로 적절한 것’을 묻는 것이었는데 솔직히 자신도 모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교과서와 수업에나 집중하라는 교육이라며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덧붙이기를 2학기 연속 4.0 이상의 평점을 받은 서울대생을 심층 면접했더니 고학점 비결은 교수의 농담까지 받아적는 완벽한 필기, 강의실 앞자리에 앉는 것, 강의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며 개탄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는 수없이 지적을 받아왔지만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주입식 교육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정권마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해법을 내놨지만 사교육이 수그러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교육방법과 오지선다형 출제는 그대로 둔 채 사교육 경감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생긴 일이다. 학교 교육의 초점이 수능 1등급을 몇 명이 받고 좋은 대학에 몇 명이 들어가느냐에 맞춰져 있다 보니 교육의 틀이 바뀔 수가 없다. 방과후 교육과 같은 사교육 경감대책은 매우 제한적인 효과만 거뒀을 뿐이다. 그것도 실력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을 학부모 대부분은 알고 있다.

 사실 사교육을 잡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정답을 맞추는 학생보다 생각할 줄 아는 학생을 만드는 교육을 하면 된다. 이런 교육에서는 학원이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평가방법은 그대로 둔 채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허구이자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현재의 방식은 학생들을 학원으로 달려가게 만들 수밖에 없다.

 정유라 부정입학에서 보듯 힘 있는 자들의 탈선 입학이 횡횡하는 우리 현실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수능 점수제를 포기하기란 어렵다. 창의적인 학생을 뽑는 방식으로 전형방식을 바꿨다가는 정권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힘 있는 자들과 대학에 끊임없이 의심의 시선이 모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4차 산업시대를 맞은 이제는 생명력을 다한 교육방식을 과감히 버려야 할 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수능은 최소한의 대입자격 시험으로 바꾸고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기면서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정권의 부담과 국민의 의심을 줄이고 교육개혁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다.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도 힘든 수많은 전형방식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5년짜리 한시적 정권이 백년대계인 교육을 실적을 탐해 이리저리 재단하다 기형화된 것이 현재의 수능시험이고 전형방식이다. 이번 새 정권도 교육개혁안을 들이밀 것이다.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개혁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뭘 하려고 하지 않기를 제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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