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33 (토)
친절한 인권침해?
친절한 인권침해?
  • 원정희
  • 승인 2017.03.28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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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희 진해경찰서 청문감사관실 순경
 한때 경찰관의 인권교육 과정 중에 ‘친절교육’이 꼭 포함되던 시절, ‘인권 보호’와 ‘고객 만족’을 같은 가치로 생각해 인권교육 시간에 항공사 승무원들을 초청, 미소 짓기 연습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인권=친절’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친절하게 상대를 대하는 건 고유의 전통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덕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친절과 인권을 등가의 가치라고는 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친절한 인권침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9월 비 오던 어느 날, 국회 앞에서 비를 맞으며 ‘중증 장애인에게도 일반 국민이 누리는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며 1인 시위를 하는 장애인에게 우산을 씌워준 한 경찰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누군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네티즌들은 ‘당신 같은 분이 계셔서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인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경찰을 위해 세금을 냅니다’ 등과 같은 반응을 보였고, 우산을 씌워 준 경찰관은 ‘인권 경찰’로까지 불리게 됐다.

 그러나 막상 도움을 받은 장애인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경찰관이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친절을 베풀었고, 그 장면을 자신의 허락도 없이 인터넷에 올린 제3자의 행위 또한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산을 씌워 준 경찰관도 틀림없이 약자 보호를 실천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도움을 받은 장애인은 오히려 자신을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한 것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서는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인권 존중은 선의나 겉으로 나타나는 예의범절을 갖추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배려와 시혜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여기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인권 존중을 위해 조건 없는 친절을 베풀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동등한 인권의 주체로 생각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간 ‘인권 경찰’로 국민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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