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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 정영애
  • 승인 2017.03.30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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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얼마 전 근로시간 단축 안 처리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전격 합의됐다.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14시간을 단축해 시행함으로써 일자리 나눔(job share)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내린 고육지책이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 중 제일 높기로 소문 나 있다. 서구 유럽제국이 30~33시간대인 것에 비하면 거의 2배 가까이 근로시간이 긴 셈이다. 이에 따라 수년 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경제계, 노동계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주된 이유 중의 첫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서구 선진국에 비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62% 수준(금액상 평균 501만 6천705원대 311만 283원)에 머물고 있다. 아마 50%에도 못 미치는 중소기업이 더 많을 것이다. 이처럼 열악한 중소기업근로자들의 임금은 연장근로에 의해 어느 정도 보충해온 게 사실이다.

 두 번째로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구인난, 특히 3D 업종의 구인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중소기업의 부족인력이 26만 명 정도인데 상시 채용공고를 내도 8만여 명의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근로시간을 합의안대로 52시간으로 단축할 경우 현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인력운용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한 추가 인력확보에 따른 생산비용의 증가는 결국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서구 유럽(32시간)에 비해 52시간이라는 단축 근로시간도 많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구 유럽은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졸과 고졸 간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근로자의 불만은 없다. 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생산성인데 장시간 일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근로현장의 생산성이 서구 선진국에 비해 60% 선에도 못 미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 문제는 근로현장의 인력관리운용과 생산설비시스템의 문제에 기인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체계화된 기술인력 양성교육이나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스마트 공장 생산시스템 등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구축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이런 효율적인 생산시스템을 갖출 인적ㆍ물적 여력이 있겠는가.

 당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 2015년 9월 노동개혁 5법 중 하나로 정부ㆍ여당의 5법 패키지 방침으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가 4법, 3법, 2법, 파견법 등 쟁점법안들이 논의되다가 이번에 4당이 전격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간 정부ㆍ여당이 중소기업의 경영상의 부담 등 급격한 영향이 우려돼 개정근로기준법을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토록 하자고 주장해 왔으나 어수선한 정국 탓인지 이 안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아직 이번 합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이 법대로 근로시간 단축 안이 시행된다면 중소 뿌리 산업은 고사위기에 직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경총이나 중기협에서 극구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틈새에서 쉰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의 경제가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제일주의 정책으로 우리 경제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적게 일하고도 생활에 충분한 급여를 받아 안정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근로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근로시간 단축을 합의한 것은 중소기업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자칫 우리 경제 현실을 무시한 대중영합적 정책 시행으로 교각살우의 우를 범 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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