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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아쉬운 박 전 대통령 구속
지혜가 아쉬운 박 전 대통령 구속
  • 이태균
  • 승인 2017.04.02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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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균 칼럼니스트
 세계는 물론 우리 역사에서도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한 혐의로 탄핵된 후 뇌물죄를 비롯한 다수의 범죄혐의로 구속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국제화 시대에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외국인에게 당당하게 나서기가 두렵고 망설여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업중생(共業衆生)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설령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입감되는 모습을 보고 박수치는 일부 국민이 있다는 사실에 나라 꼴이 정말 통탄스럽다. 이제 그에 대한 분노는 거두고 냉정을 찾을 때가 됐다.

 뒤돌아보면, 박 전 대통령이 탄핵과 구속되기까지 언행을 살펴보면 지난 4년여 동안 그가 보여준 국정운영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참모를 그냥 두지 않고, 참모의 조언보다는 ‘나 홀로 국정’ 스타일이 이번에는 ‘내 잘못은 없다는 판단’으로 이어져 불행을 초래하고 말았으니, 대통령은 국민은 물론이고 참모들과의 소통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인사권과 국정운영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야당과 국회 탓으로 돌리던 ‘내 탓보다는 네 탓 정치’가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은 방기한 채 세간의 여론과 언론의 포화에 대한 그의 인식은 국정운영 발목을 잡고 흠집 내기를 하려는 상대방의 문제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거의 평생을 소위 공주로 살아오면서 살림살이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 사적인 인연으로 맺어진 최순실 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애석한 것은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최순실과의 관계를 진작 정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권유도 있었지만 매몰차게 뿌리쳤다는 사실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그는 민심에 반격하는 길을 선택해,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는 잘못을 인정해본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오에 대한 법률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고와 판단이 진짜 비극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주변에 법률 참모와 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그들의 조언이나 변호가 박 전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으면서 박 전 대통령이 극단적 버티기와 책임 회피는 민심을 더 자극했고 국민으로부터 최소한의 동정심마저 잃게 만든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그의 버티기가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다’는 평가로 이어져 탄핵 인용의 주된 사유가 됐고, 나아가 그가 법률을 지키려는 의지도 없고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빌미가 됨으로써 분노한 민심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결정에 힘을 보태는 결과를 낳게 하고 말았다. 탄핵이 되기 전에야 헌법위반 문제를 다퉈야 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란 신분을 배경으로 버티기가 가능했지만 그는 이미 정치적 사형에 해당되는 대통령직을 파면당했고 이제 구속된 피의자 신분으로 진실을 가리는 법정에 설 날이 머지않았다. 달라진 현실에 대한 인식변화와 변호사들도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의 기분만 헤아리는 조언이나 변호보다는 법률은 물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변호가 절실하다. 상황을 극단으로 밀고 가며 벼랑 끝 승부수로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이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진 불행의 씨앗이 됐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헌재는 물론 검찰과 법원도 헌법과 법률적 잣대로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처벌하려고 해 아쉽다. 헌재와 검찰, 법원이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헌법과 법률적 잣대로 판단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법률적 지식만 가지고 논한 경우다. 그가 저지른 잘못은 미워해도 파면당한 그를 구속까지 해야만 했을까. 탄핵을 통한 파면과 구속은 박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불행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사에 치욕적인 사건으로 오점을 남기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은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사실 인식과 반성이 부족한 것에 대해 일벌백계(一罰百戒)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도 당하고 구속된 경우가 없었다는 사실도 고려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헌재의 파면 결정은 그의 정치생명에 이미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고, 명예도 모두 잃게 만들었다. 어쩌면 탄핵에 이은 구속은 이중적인 처벌로 엎어진 사람을 머리까지 밟는 것이 아닐까. 왜냐면 주거가 확실해 도주 우려가 없고, 이미 그와 관련된 사건 당사자들이 대부분 구속돼 재판 중으로 충분한 인적ㆍ물적 증거가 검찰에서 밝힌 것처럼 차고 넘침으로 불구속으로 형사재판 절차를 밟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을 제도하면서 지식보다는 지혜로운 판단을 하도록 일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은 그가 사연(事緣)에 얽힌 최순실과의 인연을 냉정히 뿌리치지 못한 업보이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봤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울길 없다. 분노한 민심 속에 형법의 잣대만이 과연 최선책일까 지혜로운 고려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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