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37 (토)
폴리페서의 명과 암
폴리페서의 명과 암
  • 이광수
  • 승인 2017.04.03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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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한 달 뒤인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한자리 차지하겠다고 정치판에 줄을 서는 대학교수들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교수는 그 나라의 최고 지성인들이다. 요즘 학자가 아닌 정치지망생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교수들로 정치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분들은 과연 학자인가 정치인인가. 교육인적자원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대선 캠프 및 자문조직에 참여한 교수통계를 공개했는데(개별 인적사항은 미공개) 물경 2천260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교수(7만 5천479명)의 3%에 해당하는 숫자다. 현재 유력정당 대선후보 1위를 차지한 캠프에는 무려 1천400명이, 또 다른 유력 후보 캠프에는 560명이, 나머지 3명의 캠프에도 각각 100명이 포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들은 한사코 자신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한단다. 뭔가 주변 눈치가 보이고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행태가 걸리는 모양이다.

 폴리페서(polifess)는 정치라는 politics와 교수라는 professor의 합성어로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을 정치에 접목시켜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옥스퍼드ㆍ캠브리지, 일본의 도쿄대, 쿄토대, 와세다대 등 출신의 석학들이 정치현장에 참여해 국가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경제경영과 문화예술 분야에 탁월한 능력과 식견을 지닌 석학들이 참여해 국가정책 수립의 자문역인 싱크탱크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어 문제다. 대학의 학문연구 풍토가 저해되고 학계의 권력 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정치판에 뛰어드는 교수는 사직서를 내야 한다. 우리나라는 참여한 정당의 정치인이 당선되거나 본인이 피선거권자가 돼 당선되면 교수직을 유지한 채 장기휴직을 하고, 낙선되면 다시 대학으로 컴백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실정이다. 또한 재직 중에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잦은 휴강과 부실한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고 있다. 더욱이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보듯이 청와대 핵심 참모와 내각의 중요 보직자가 탄핵사건에 연류 돼 영어의 신세가 된 것을 봐도 폴리페서의 폐해를 실감할 수 있다. 얼마 전 모 대학 폴리페서가 대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의 국민경선 참여 신청을 독려하고 정치 발언도 서슴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어디 폴리페서 뿐이랴. 비슷한 신조어로 언론과 자주 접촉하면서 카메라 마사지(?) 받는 것을 즐기느라 학술연구와 강의는 부실하게 하는 텔레페서(television+professor)도 있다. 이는 자신을 언론에 자주 노출시킴으로써 정치권과 정부의 러브콜을 받으려는 약은 수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대선, 총선이 있을 때마다 메뚜기 떼처럼 대학교수들이 정치판에 몰려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자칭 이 나라 최고 지성이라는 대학 교수들이 입만 열면 우리정치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한자리 해보겠다고 권력 지향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자가당착이요, 모럴해저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영국 속담에 ‘정치하는 집안과 혼인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권력이란 언제 나락 끝으로 추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하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비극으로 국론이 사분오열돼 있다.

 이 사회를 리드하는 최고의 지성인 대학교수들이 학자로서의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고 폴리페서로 전락한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앞에 부끄럽지 않은 학자로 거듭나는 참 교수상을 기대해 본다. 비록 연목구어 격이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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