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1:01 (금)
또 다른 언어의 온도
또 다른 언어의 온도
  • 김혜란
  • 승인 2017.04.12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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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하루종일 정치인들의 말 잔치를 보고 듣는다. 별의별 말들이 다 나온다. 듣고 보면서 나름대로 평가도 한다. 내용은 좋은데 너무 심심한 말도 있다. 들을 때마다 화들짝 혀를 내두르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이도 있다. 소리 자체에 자신의 분노를 담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지나치게 한결같은 말만 해서 마음에 잘 안 들어 온다. 정신을 바짝 곤두세우고 들어야 해서 머리가 아프다. 어떨 때는 화가 나고 답답하기도 하다. 어떨 때는 아침에 들은 정치인의 말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따끔하게 주사 맞듯 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말도 있다. 주먹으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충격이 큰 말도 있다. 물론 시원하고 믿음직한 이야기도 간혹 들린다.

 돈 들이는 홍보 마케팅이 아니라 순전히 독자들 간의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 중 언어나 말에도 온도가 있다면서 작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 인기다. 너무 뜨거운 말을 내뱉으면 자신은 시원할지 몰라도 상대방은 정서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고, 너무 차가워도 같은 결과가 초래된다고 주장한다. 되도록 충격이나 갈등요소를 줄이는 언어를 쓰고 말을 해야만 상대방과 자신이 언어가, 나아가 우리 사회가 적당한 온도 속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려는 듯하다. 언어나 말은 사람의 체온과 비슷해야 한다는 뜻일 것도 같다.

 뜨겁고 차가운 기준은 결국 그 사람의 판단이다. 사람이 가진 감성이나 정서, 그리고 논리를 통한 판단일 것이다. 지나치게 논리적이거나 감정적인 것 하나만으로는 언어나 말의 온도를 잰다면 그것에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언어나 말도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전제한다면, 오랫동안 가슴에 따뜻한 여운이 남아있는 언어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한다. 감성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책이 아니라 전쟁터인 현실의 언어로 돌아와 보자. 언어의 온도를 사람의 체온에만 적당하게 맞추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말이나 언어의 기능이 위안이나 치유의 수단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지금 위안이나 치유가 강조되는 이유는 그 기능 외의 영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말이나 언어를 수단으로 상대방의 지적인 뇌나 감정을 자극해서 협박(?)도 해야 하고 유혹도 해야 한다. 글과 말의 세상이 다 그렇다. 말과 글을 통해 설득과 협상하는 일이 가장 큰 생존방법인 경우가 언어 세상에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언어는 소통의 주요수단이고 말은 자극과 반응을 통해 이어진다. 체온과 비슷한 수준의 언어는 몸과 마음의 안정은 줄지언정 자극에는 큰 효과가 없다. 때에 따라서는 강한 자극이 더 효과가 있다. 효과적인 자극을 위한 언어의 온도는 뜨뜻미지근해서는 힘이 없다. 차갑거나 뜨거운 무엇이 훨씬 효과가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언어 온도가 관건이다. 아무리 덜 자극적인 따뜻한 온도의 언어를 통해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상대방이 가진 언어의 온도가 어떤가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진다. 이미 뜨겁고 차가운데 단련돼 있는 사람들은 여간한 온도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를 통한 설득과 협상에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언어는 더 뜨겁고 더 차가운 언어로 다가가야 할 때가 있다.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언어는 더 극적인 온도를 필요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태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어떤 언어도 받아들일 자세가 돼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은 항상 마음을 열고 말을 듣지 않는다. ‘어디 한번 설득해보시라’거나, ‘당신이 나를 어떻게 아느냐’는 식의 태도가 상당히 많다. 또한 상대방에게 주어지는 순간순간의 상황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힘든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어떤 언어가 필요할까. 열정적인 통찰력과 차가운 이성의 판단력으로 언어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언어를 쓸 수 있어야 한다.

 한동안 사람들은 언제나 위안과 위로의 언어를 받고 싶어 한다고 여겼다. 상처 입은 마음, 스트레스가 쌓이고 피로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현실 속에 위안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언제든 생긴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역에서 또 다른 언어를 원한다. 갈 곳 몰라 하는 삶과 마음에 좌표를 제시해주고 단단하게 다져진 길을 안내해주기를 기대한다.

 결국, 우리가 쓰는 언어의 온도는 그때그때 달라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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