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2:15 (금)
봉투 단상
봉투 단상
  • 이주옥
  • 승인 2017.04.18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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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결혼 시즌이다. 그간 혼례는 봄, 가을이 좋은 시절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각자의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결혼을 하는 계절이나 요일, 시간도 일반적인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으니 굳이 시즌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요즘 난 부쩍 청첩장 받는 일이 잦아졌다. 비단 봄 때문은 아닌 듯하다. 친구들이 한창 자녀들 혼사를 시키는 나이라는 이유가 더 타당할 것이다. 내게는 먼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도 자식 결혼이 목전에 닥쳤다는 실감이 난다. 하지만 마냥 부러움과 기쁨의 감정에 앞서 부조금 걱정부터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매달 적잖은 부조금 봉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겐 예삿일이 아니다. 한 달에 많게는 대여섯 군데가 될 때도 있으니 빠듯한 살림에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우스갯말로 적금 깨서 부조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나 보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혼상제의 대소사를 치르며 산다. 그중 죽음에 대한 슬픔과 혼사의 기쁨이 가장 두드러지게 밖으로 표출된다. 의당 소소하나마 부조금으로 성의를 표함으로써 축하하고 위로 한다. 더구나 요즘은 모바일로 청첩장과 부고장을 받게 된다. 예전 청첩이나 부고를 알릴 때 일일이 손으로 주소 써서 보냈던 것에 비하면 시간이나 보낼 사람의 명단 제약이 작다. 하지만 모바일로 대량 보내다 보니 자칫 남발해서 결례를 범하는 단점도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아예 부조금을 보낼 계좌번호도 찍혀 있다. 직접 가지 못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송금만 하면 된다. 이후 획일적인 문구가 쓰인 단체 인사장을 받으면 거래는 완벽하게 이뤄진다. 한번 대소사를 치른 사람은 아예 이름과 금액이 적힌 명부를 만들어 두고 상대방이 나에게 건넨 금액에 맞춰 돌려준다는 사람도 있으니 전통의 미덕이 철저하게 거래로 전락해 버린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부조금은 대소사를 치르는데 경제적인 것은 물론 심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 특히나 품앗이라는 개념이 강하기 때문인지 의무처럼 주고받는다. 예전에야 곡식이나 비단으로도 했지만 요즘엔 거의 현금이다. 그것도 삶의 질이 나아지고 환산 단위가 변화하면서 그 금액도 조금씩 상향하고 있다. 봉투에 돈을 넣을 때마다 고민도 하고 눈치도 보게 된다. 또한 결혼식도 호텔에서 고급스럽게 치러지는 일이 많으니 부조금 봉투와 점심 한 끼가 맞바꿔지는 형태로 교환되는 듯하다. 어쩌다 사정이 생겨 가족이라도 한 명 더 동반하면 괜히 계면쩍은 게 인간적으로 조금 삭막한 부분이 없지 않다. 예전 어느 집 잔치가 있는 날엔 온 동네 사람들은 한두 끼 밥걱정은 안 해도 됐던 것에 비하면 이 또한 격세지감이다.

 젊은이들 중 아예 결혼을 포기한 사람은 축의금으로 되돌려 받을 명분이 없으니 지인들이나 친구의 결혼에 무조건 봉투를 내미는 관행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중엔 공개적으로 비혼식을 해서 돌려받을까 고민도 한단다. 나도 딸들이 일찌감치 비혼을 선언했으니 축의금 출현에 조만간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애경사에 혼주나 상주에게 눈도장까지 찍어야 제대로 역할 다 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간혹 지방에서 애경사가 있는 날은 꼬박 하루 품을 들여서 결혼식이나 문상을 다녀오기도 한다. 차로 너댓 시간 거리를 갔다가 봉투 건네고 얼굴도장 찍고 선 채로 돌아선다. 비생산적인 일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그 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친인척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도 있지만 솔직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람 노릇 하며 산다는 건 이래저래 녹록지 않음을 실감하게 되는 일이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발품 팔아 축하하고 애도하는 예전의 정서가 그리우면서도 바쁜 세상에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하니 아이러니한 세태다. 한세상 섞여 살면서 함께 겪는 일 중의 하나인 관혼상제에 대한 예의도 세상 따라 그 유형이나 의미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장단 맞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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