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2:16 (수)
지역명칭 부여과정 언급해 보니
지역명칭 부여과정 언급해 보니
  • 송종복
  • 승인 2017.04.24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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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오늘날 통용되는 전국 도(道)의 명칭은 고려에서 조선 초기에 만든 것이다. 그 후 조선 세종 때 서북과 동북 방면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두만강 일대를 우리 강토로 회복한 이후부터 전국 8도(道)로 제정했다. 그리고 00道라고 할 때의 ‘도’는 ‘00방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조선시대 역(驛)을 관장하는 찰방(察訪)의 관직 앞에 붙어있었던 명칭과 비슷한데, 조선시대의 광역 지방명칭으로 이런 체제를 따르게 된 것이다.

 ‘경상’도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이다. 고려 예종원년(1106)에 ‘경상진주도’라고 처음 ‘경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외 동남도, 영남도, 산남도, 경상진주도 등으로 부르다가, 고려 충숙왕 원년(1314)에 경상도가 됐고, 조선 태종7년(1407)에 좌ㆍ우도로 나눴다. 이때 좌ㆍ우도는 모두 서울의 궁궐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의 방향이다. 여기서 좌ㆍ우도는 서열상 좌도가 먼저이다. 관찰사는 대구에 주재하며, 그 감영을 영영(嶺營), 감사를 영백(嶺伯)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영’은 지금 영남의 ‘영(嶺)’과 같이 고개를 뜻하는 이름이다.

 ‘전라’도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이다. 고려 현종9년(1018)에 ‘전라도’라는 이름이 사용됐으며, 그전에는 강남도, 해양도, 전광도라 불렀다. 조선 태종7년(1407)에 군사행정상 편의에 의해 좌ㆍ우도로 나눴는데, 동쪽 산악지대를 좌도, 서쪽 평야지대를 우도라 했다. 관찰사는 전주에 뒀으므로 감영을 완영(完營), 감사를 완백(完伯)이라 했는데, 여기서 ‘완(完)’은 옛 이름 완산주의 머리글자를 취한 것이다.

 ‘충청’도는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이다. ‘충청’은 고려 예종원년(1106) ‘양광충청주도’라고 할 때 ‘충청’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충청좌도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청우도는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에 해당된다. 관찰사의 영은 공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금영(錦營), 감사를 금백(錦伯)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모두 금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싼 그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경기’라는 이름은 고려 현종9년(1018)에 처음 사용됐다. 충청도의 북부가 들락날락 했으나 대체로 경기좌도는 한강이남지역, 경기우도는 한강이북지역이 해당됐다. 관찰사는 처음 수원에 주재했다가 뒤에 광주(廣州)로 옮겼으며, 감영을 기영(畿營), 감사(觀察使)를 기백(畿伯)이라 부른 것도 모두 경기의 ‘기’를 붙인 것이다.

 ‘강원’도란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이다. 강원지방은 삭방도, 춘주도, 동주도, 연해명주도, 교주도 등으로 불렸다. 조선 태조4년(1395) ‘강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관찰사는 원주에 주재했으므로 감영을 원영(原營), 감사를 동백(東伯)이라 불렀는데, ‘동’은 관동의 ‘동’자를 붙인 것이다.

 이같이 지역명칭 중에는 합성지명(合成地名)이 많은데, 주로 대표적인 고을을 선택하는 계수관(界首官)과 품계가 높은 관리가 주둔하는 고을의 명칭을 먼저 붙였다. 그럼 두 고을 중에 큰 고을이름이나 역사가 오래 된 고을이름을 앞에 붙이는 것이 관례다. 이로 보면 창원터널(김해~창원), 부산외곽순환도(김해 <진영ㆍ한림ㆍ생림ㆍ상동ㆍ대동>~부산)의 명칭에 김해의 ‘김(金)’자는 어디가고 얼토당토않은 첫 글자가 나오니 한심하기만 하다. 좀 역사에 조예가 있는 지명제정위원회는 없는가. 탁상행정이 지역민의 자존심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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