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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남혐녀 신조어를 경계하며
혐남혐녀 신조어를 경계하며
  • 이광수
  • 승인 2017.04.26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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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SNS에서 범람하는 각종 혐남혐녀(嫌男嫌女) 신조어가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 공간에서 양산되는 이런 말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런 신조어에 반영된 현실은 크게 금수저와 흙수저로 재단한 계층 갈등적 표현과 된장녀, 김치녀, 김치남, 한남충, 스시녀, 벽돌남 등의 이성 혐오적 표현, 헬조선과 지옥불 반도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난국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신조어로 대별할 수 있다. 이런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언어적 유희로 희화한 사회적 상황과 문화적 배경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 중 혐남혐녀에 관한 신조어는 페미니즘 성향의 메갈리아와 워마드 사이트, 남성 지배적 웹인 일베 등에서 제조돼 SNS에 유포되고 있다.

 얼마 전 한 TV 토크쇼에서 김치녀에 대한 반론과 변론이 치열하게 전개됐는데, 게스트 출연자가 실제 100여 회의 미팅에서 일명 김치녀를 상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자리에서 혐녀를 지칭하는 김치녀, 된장녀는 물론 혐남을 지칭하는 김치남, 한남충, 벽돌남 까지 등장해 갑론을박했다. 된장녀는 지난 2006년 야후코리아 인터넷 신조어 1위를 차지한 유행어로 한 끼 밥에 해당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며, 유명 해외브랜드제품을 거리낌 없이 사는 명품족을 일컫는다. 자신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부모에 의존하거나 사귀는 남성의 경제적 능력으로 과소비를 일삼는 젊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이 말과 조금 구별되는 귀족녀가 있는데 부유층의 2~3세로 남들과는 다르다는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실존하는 젊은 여성 부류이다. 특별한 명품을 선호하고 자신의 신분 유지상 필요한 소비를 하면서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여성을 말한다. 전자가 허상적 허영끼가 있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후자는 실제 사치할 능력을 갖고 있으나 주제 파악을 못하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같은 부류로 치부한다.

 된장녀는 지난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김치녀로 치환됐다. 김치녀는 공동적 책임을 면하려는 여성, 남자에게만 경제적 책임을 지우고 면하려는 여성,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원하지만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무개념의 여성을 일컫는 여성비하 용어다. 주로 일베를 중심으로 유포시킨 말이다. 김치녀와 반대되는 개념녀와 스시녀(일본여자를 좋게 표현한 말)가 있다. 개념녀 역시 남이 인정하지 않는데 스스로 그렇다고 착각하면 김치녀나 다름없다. 김치녀의 원래 개념은 김치를 좋아하는 그냥 한국 여자였다. 그런데 지난 2011년 일베 게시 글에서 김치녀가 여성을 비하하는 부정적 의미로 묘사됐다. 사실 그 당시 김치남이 한국 남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파생돼 쓰이다가 한국 여성을 김치녀로 농담 삼아 속되게 말한 것이 굳어져 된장녀를 제치고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로 정착(?)됐다. 김치녀 태동의 단초는 더치페이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에서 밥값과 기념일 선물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가 여성들로 하여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혐녀 이미지로 고착된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당연한 행동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시대변화에 발맞춰 최소한의 염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자가 밥을 샀다면 커피는 여자가 사겠다는 의사 정도라도 표시하면 남자가 다 사도 기분 좋을 것이다.

 일베충의 여성비하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페미니즘 여성 사이트가 메갈리아와 워마드이다. 메갈리아(Megalia)는 디시인사이드 소속의 메르스 갤러리의 이용자들을 노르웨이의 페미니즘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에 빗대어 표현한 것에서 생겨났다. 이 사이트는 여성혐오를 그대로 남성에게도 반사해 적용하는 미러링을 사회운동전략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15년 6월 혐남 신조어로 한남충(벌레 같은 남자), 강된장남, 숨쉴한(숨쉴 때마다 한 대씩 때릴 남)을 쏟아 냈다. 워마드 역시 남성혐오 여성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사이트로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사이트이다. 지난해 광복절에 안중근과 윤봉길의사를 조롱하는 합성사진과 함께 안중근을 미친 테러리스트, 손가락 장애 아저씨, 두 분을 한남충으로 올리는 한편, 국기모독과 남성알몸사진을 무더기로 이 사이트에 올려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일베는 일간 베스트의 약칭으로 좌파진영과 페미니즘사이트를 공격하는 극우성향의 사이트이다.

 이처럼 남녀를 대상으로 한 유희적 언어폭력으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는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지양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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