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1:57 (금)
우리의 영웅은 어디서 날아올까
우리의 영웅은 어디서 날아올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4.27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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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토론이 있다. 대통령 후보가 벌이는 토론이 주목받고 있다. 주요 정당 후보 다섯 명의 입에서 나오는 깜짝 놀랄 말에 입을 벌리거나, 그저 그렇고 그런 말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은 그중에 한 명이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 리더이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나 국가의 구성원은 리더가 자기보다 여러 방면에서 낫거나 아니면 최소한 한 개라도 뭔가 다른 게 있다고 여긴다. 아무리 둘러봐도 잘난 구석을 찾지 못하면 뻔뻔스럽게 이야기 잘하는 그 하나라도 높게 사고 싶은 심정이 지지자들에게 있다.

 토론을 보면 각 후보들의 ‘실력’이 드러난다. 여기서 실력은 공부 실력이 아니고 그렇다고 말을 잘하는 실력도 아니다. 후보의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꾸며댄다고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은 말 속에서 풍겨나는 참된 마음이고 상대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길이다. 정치 리더에게 이런 애매모호한 마음이 찾는 것은 우리가 여러 정치 지도자들에게 배신을 당해 실망을 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쩌면 권모술수가 판치는 영역이라 나약한 사람은 그 판에 끼지도 못한다. 정치는 나쁜 ‘그들’이 하고 우리는 필요할 때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면 된다.

 우리는 신이 죽은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서 신은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가 아닌 삶의 의지를 불태울 때 바라볼 수 있는 영웅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 삶의 예술가가 돼야 한다. 그렇지만 삶의 의지가 꺾이고 생존경쟁에서 밀린 많은 사람들은 꽃비처럼 땅에 떨어진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이지만 또한 가장 현실적이다. 매일 ‘어떻게’라는 질문을 받을 때 세대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다. 학생들은 학업에 집중해 바라던 대학을 들어가려고 ‘어떻게’에 충실하려 한다. 젊은이들은 취업에 발버둥 치면서, 중년은 또 한 번의 삶을 무엇으로 채우나 고민하면서, 어르신들은 일자리를 얻어 삶에서 더 보람을 느끼려 하면서 ‘어떻게 살까’에 답을 구한다.

 지금 전국에 영웅들이 날아다닌다. 이들은 온갖 공약을 내놓고 대한민국을 구하려고 불 속이라도 뛰어들 태세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나오는 히어로를 보면 든든하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어벤져스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인 ‘울트론’이 등장한다. 울트론은 처음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개발된 최고의 인공지능 컴퓨터였다. 우리의 영웅 아이언맨과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가 울트론에 밀리다 끝에 승리를 하면서 인류를 구한다. 모든 영웅들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끌고 거기에 강력한 힘까지 뿜어내 관객을 압도한다.

 다음 대통령은 인류를 구한 어벤져스 영웅처럼 우리나라를 구할 사명을 받았다. 지금 우리나라 안보는 위기 상황이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사드(THAD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일부 핵심 장비를 경북 성주골프장에 전격 배치했다. 사드의 운용 시험을 대통령선거 이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사드 배치 하루 전날 인민군 창건일 85주년을 맞아 강원도 원산에서 대규모 화력훈련을 했다. 어벤져스는 강력한 힘에 대항해 더 강력한 힘으로 끝을 내지만 남북한 대결을 해결하려면 힘과 더불어 대화가 필요하다. 무작정 힘을 겨루다 마지막은 파국을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토론에서 국가 안보를 두고 위기 상황을 인식하는 데는 비슷하지만 해결책은 보수ㆍ진보 후보 간 달리했다. 성주 지역 주민들은 사드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깜짝 배치에는 노림수가 있다. 향후 여러 변수로 흔들릴 사드 배치에 대못을 박자는 전략이 깔려있다. 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인데 한쪽 후보들은 대북정책에 장밋빛 청사진을 내밀어 국민을 다독이고, 다른 쪽 후보들은 힘을 내세워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안보를 제대로 해결할 영웅이 없어 목숨처럼 품어야 할 안보 문제가 길거리를 뒹구는 돌멩이 같다. 구르다 처박히면 거기에 두면 그뿐인 것처럼.

 대통령 후보들이 토론에서 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드러낸 소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진정성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표심을 의식해 안보 공략이 오락가락하는 탓에 나라의 안위가 걱정스럽다. 공공 일자리 공약은 달콤하지만 재원 조달에 의문을 안 달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삶이 꼬이면 현실 도피를 꿈꾸기를 좋아한다. 대선 후보 가운데 슈퍼히어로가 안 보여 답답하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뒤숭숭한 시대에 슈퍼히어로 영화가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는 어벤져스 영웅 같은 특출한 인물이 아니다. 아이언맨은 어디에 던져놓아도 문제를 해결하고 하늘로 솟아오르지만 비현실적인 캐릭터에 어쩐지 마음이 안 간다. 대통령 후보는 진정성을 무기로 영웅이 돼야 한다. 비현실 세계에서 영웅을 대망하는 시대에 대통령 후보 가운데 감동의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진짜 영웅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그 영웅은 강력한 무기를 들고 악당을 물리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을 때 작은 길이라도 내주면 충분하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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