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살구꽃이 피었다 피어. 햇살이 아픈 잎들 몸 밖으로 몰아내면 머엉한 저는. 목마른 봄이 돼서야 다시 사랑의 말을 걸지요. 겨우내 숨차게 내려와 맞닿은 꽃들이 마구마구 연분홍 쪽지들을 또 보내요. 잔잔한 파장으로 제 속에 허공을 넓히던 담벼락 아래 냉이 꽃이 피네요. 살기 위해 저질렀던 싹이 파란 죄, 황량한 마음에 제 아픈 향기를 날리는 날 당신은 흰 꽃잎 한 장 그려주고 가셨네요. 가을 겨울 지나 이제야 뜨거운 눈물이 떨어져요. 어디로 흐르지 못해 막막한 가슴으로 정토사 굽이진 산길에 닿았습니다. 생의 가장 깊은 삼문(三門) 모랫바닥에서 무거운 껍질 벗겨 놓고 싶어요. 꽃잎 떨어져 다 마를 때까지 당신의 결 따라 따라가다가 버들강아지 솜털로 피어나는 물의 마음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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