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22:32 (목)
조이스틱 레버를 당기며
조이스틱 레버를 당기며
  • 이주옥
  • 승인 2017.05.09 2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주옥 수필가
 느닷없는 인형 뽑기 열풍이다. 홍대 앞이나 젊은 층들이 자주 다니는 지역에 인형 뽑기 방이 성행 중이다. 기계마다 최근 인기 있는 캐릭터 인형들이 가득 들어차 행인들을 유혹한다. 원래는 오락실에 한두 개의 뽑기 자판기가 설치돼 있었을 뿐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은 비인기 종목의 게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인형 뽑기가 유행을 타고 너도나도 그 매력에 빠지게 됐나 보다. 그래서인지 가방에 귀여운 인형이 하나씩 매달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가뜩이나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그 순간만큼은 만사 제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지 모른다.

 골목 문구점이나 도심 상가 앞에도 인형을 가득 담은 사각형 박스가 놓인 곳이 많다. 아니 제법 근사한 외양을 갖추고 뽑기 기계를 여러 대 놓은 전문 샵이 나날이 늘고 있다. 그곳엔 교복 입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정장 차림을 한 직장인까지 북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정액의 지폐를 넣고 자동차 기어처럼 생긴 조이스틱을 손으로 잡고 박스 안에 달린 집게처럼 생긴 기구를 이용해서 원하는 인형을 뽑아 올린다. 아빠들은 아이에게 커다란 인형을 뽑아 안겨주며 체면을 세우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아이를 핑계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단돈 천원으로 할 수 있는 꽤 퀄리티 높은 게임이며 또한 투자한 금액에 비해 큰 인형을 뽑을 수 있기에, 놀이치고는 제법 남는 장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저 한가한 사람들이 몇 시간 놀기에 무리 없겠거니 했다. 하지만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사회적인 문제의 반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난 1990년대 버블 붕괴로 불황이 닥쳤을 때 인형 뽑기 가게가 성행했다. 최근에 키덜트 문화가 득세하면서 캐릭터 인형의 가치가 급등한 것도 그 배경이다. 특히 과거에 유행했던 캐릭터 인형이 많은데 이것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신문에서 인형 뽑기 기계에서 200여 개의 인형을 뽑아간 사람들이 절도죄로 붙들려간 기사가 났었다. 결국 자신들의 개인 기술을 이용해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했던 일이라서 처벌할 수 없는 무죄로 판결이 났다고 한다. 훔친 게 아니라 기술로 뽑아 간 것이기 때문에 돈 넣고 인형을 뽑는 게임의 본질을 어기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게임제공업에 해당하는 인형 뽑기 방에서 지급되는 경품은 소비자 판매가격 5천원 이내의 문구 또는 완구류만 하게 돼 있다. 그 이상의 물품은 사행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혼자 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형 뽑기가 간편한 나 홀로 오락으로 떠오른 측면도 있다. 비교적 저렴한 돈으로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는 불황형 놀이라고 할까. 무력감에 빠진 이들이 작게나마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성행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여러 가지로 어려운 현실이다 보니 그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박탈감에서 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느끼는 희열감과 성취감이 학창시절에 100점을 맞았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한다. 새삼 이해가 되는 내용이다.

 ‘나라를 구한 기쁨, 능력자, 덕후 반열, 승부욕, 인내심 함양’은 한 인형뽑기방의 홍보문구다. 기발하고 유혹적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다분히 절박함도 엿볼 수 있다. 주머니에 천원 지폐 몇 장만 있으면 한 번쯤 기웃거리며 도전해 볼 만하다. 누구에게도 평가당하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내 집중력과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성취감을 느낄 수가 있는 것. 수많은 이력서를 들이밀어도 뽑아주지 않는 취업의 관문,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는 삶의 질곡 앞에서 오로지 내 기술과 의지로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오늘도 한 젊은이가 자꾸만 탈락되고 헝클어진 그의 인생과 미래가 누군가에게 선택돼 뽑히기를 바라며 누워있는 인형을 향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조이 레버를 힘껏 잡아당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