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부는 자신의 나라에서 갑자기 특정 파벌들 간에 폭력 사태가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받자, 자기가 보기에 한 가지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점을 지적했다. 이 농부는 “그 일이 일어난 건 못된 지도자들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역사가인 조너선 글로버는 자신의 저서인 ‘인간성ㆍ20세기 도덕의 역사’(HumanityㆍA Moral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에서 그와 비슷한 견해를 밝히면서 “한 나라 내에서 일어난 그러한 종족 말살은 종족들 간의 증오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꾸며 낸 일이다”라고 말한다.
1990년대 초에 구(舊) 유고슬라비아의 두 공화국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한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함께 살았는데 이제는 서로의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단 말인가?” 유럽으로부터 수천㎞ 떨어진 나라인 인도로 가 보자. 인도는 앞에서 언급한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저술가인 프라나이 굽테는 “인도는 한 국가로서 존속할 수 있는가?”라는 강연에서 “막대한 인도의 인구 가운데 30세 미만인 사람이 70%가량이나 되는데도, 그들에게 귀감이 돼 줄 만한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다”라고 말했다. 일부 나라에서는 지도자들이 독직 혐의 때문에 지위에서 물러났고, 한국에서도 대통령들이 줄줄이 탄핵됐다. 분명 전 세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지도력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는 약 2천600년 전에 살았던 한 예언자가 한 말이 참됨을 증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땅의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자기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10:23.)
그렇다면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테러 등 고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지도자는 없을까? 인간 사회가 분쟁으로 찢기거나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는 세상, 참된 지식을 값없이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세상, 인류가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으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은 없을까? 하루속히 카리스마적인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자기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칼럼니스트이자 저술가인 칼 토머스는, 정치를 통해 사회를 향상시키려는 노력 가운데서 근본적인 결함으로 여기는 것에 관해 이렇게 밝혔다. “진정한 변화는 일련의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가 가진 주된 문제들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세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향력 있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종교인이든 아니든) 이 세상을 참으로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면, 어떤 인물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지도자의 모습은 물질에 탐욕이 없고, 도덕과 윤리에 결함이 없으며 국민을 위해 헌신적인 국가관을 가져야 하며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